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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공감

애무 만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영유아기 스킨십 중요성

by 다독다감 2021. 6. 5.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종이 신문을 받아보던 때가 있었다. 한겨레 신문이다. 그 신문에 가끔 김정운이라는 심리학자의 칼럼이 실렸다. 텔레비전에 그는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부터 남자의 물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그리고 애무 만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까지. 하나같이 자극적인 제목에다 알맹이가 없었다. 

 

그나마 블로그에서 소개할만한 책은 <애무 만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프로네시스, 2007)인 것 같다. 일본인 야마구치 하지메가 쓴 <애무>가 원서이다.

 

그런데 김정운이 번역하면서 제목이 엉뚱하게 바뀌었다. '사랑해서 만지는 게 아니라 만지면 사랑하게 된다!'라는 붉은 문구가 뒤표지를 선정적으로 장식했다. 이 말은 역으로 섹스를 열심히 하다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의 내용은 광고 카피와는 다른, 영유아기 스킨십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었다. 포인트는 이렇다.

 

티파티 필드의 연구에 의하면,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를 마사지했을 때, 마사지를 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체중 증가율이 31퍼센트가 높다는 것이다. '피부는 드러난 뇌'이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다. 

 

"피부는 발생학적으로 뇌나 중추신경계와 똑같이 외배엽으로부터 형성되었고, 피부의 넓은 면적에 분포되어 있는 감각 수용기로부터의 자극은 척수로부터 간뇌를 통해 대뇌피질에 이르러 인지되는 한편, 대뇌 변연계, 시상, 시상하부, 뇌하수체에도 전달된다는 것이다."(248쪽)

 

원서 <애무>는 이러한 과학적 연구를 배경으로해서 아이와 어머니 사이의 신체 접촉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언제 어떻게 아이와 신체 접촉을 할 것인지를 다루었다.

 

나아가 비언어적 수단으로서의 신체 접촉의 기능을 개괄하며 노인기에 있어서 터치케어의 중요성도 나름 환기시켰다.

 

그런데 역자는 이 책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애무에 관한 스킬을 다루고 있다는 듯 원서의 순서까지 바꿔어 본말을 전도했다.

 

초판본은 애무를 상징하는 침팬지 그림이었는데, 아기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또 꼭지마다 '김교수 한마디'라는 코너에서 음담패설 같은 사족들을 달아 논제를 자꾸만 연인 사이의 애무로 억지로 끌고 갔다.

 

김정운은 서문에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문제가 아니다. 정치문제는 물론 아니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김정운은 한국 사람들이 재미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잘 놀지 못해서 그렇다는 예의 그 타령을 또 늘어놓았다. 망할!

 

그의 눈에는 당시 지하철 역사를 가득 메운 노숙자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의 눈에는 비정규직의 울분도, 88만 원 세대의 참담함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지금은 청년실업도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김정운은 또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의 악수는 2% 다르다. 정치인이 내민 손을 잡은 시민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은 것이다. 유명한 정치인과 악수하는 그 순간만은 일 대 일의 대등한 관계가 된다. 유명인과 악수하고 나면 그래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78쪽)

 

정치인이 내민 손을 능동적으로 손을 잡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개 더러워서 그냥 잡아준다. 번역자 김정운은 성인군자와 같은 정치인이라도 만났던 것일까? 동서고금, 그런 정치꾼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가 어떤 정치인과 악수를 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는 모른다.

 

정치인이 구걸하다시피 손을 내밀면, 대다수 시민들은 그 순간, 그런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이 불쌍하거나 더러워서, 아니면 시민들이 너무나 착한 나머지 마지못해 손을 내민다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 그의 현실 인식 수준이 조금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만. 

 

그리 깊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 원서를 그대로 번역했으면 아마 책은 조금도 팔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얄팍한 '김교수 한마디'를 붙이고 '만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뽑은 이유일 것이다.

 

김정운은 이 책에서 "한국사회가 거칠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스킨십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다시 한번 그의 현실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그의 눈과 귀에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찬 울분들이 다만, 거칠게 느껴질 뿐 연민의 정은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굳이 과거의 책을 리뷰하는 이유는 언제 다시 야릇한 제목을 달고 미혹을 부추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원서 <애무>의 교훈은 한마디로 이렇다. 피부자극은 중요하다. 특히 영유아기와 노년기가 그렇다. 그러니 영유아기 때 정성껏 마사지해주라는 것이다. 사족으로 영유아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도 자주 애무해 주시길.

 

진실은 언제나 간명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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