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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레터스

영화 풍산개, 비무장 지대를 허문 윤계상의 강렬한 눈빛 연기

by 다독다감 2021. 4. 30.

윤계상과 김규리가 주연한 영화 <풍산개>(2011)는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평양과 서울을 단 세 시간 만에 주파하는 불가사의한 사나이, 풍산개라 불리는 ‘산’(윤계상)이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풍산개>는 최고의 키스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티즌과 평론가들의 평점은 7점대에 못 미치고 관객수도 71만명에 그친 영화였지만 윤계상이라는 배우의 강렬한 눈빛 연기 하나만으로도 소개할 가치는 충분한 영화로 생각됩니다.

 

줄거리

불가능한 소원을 이어주는 메신저 '풍산개'

주인공 ‘산’은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에게는 '풍산개'라는 별칭으로 통합니다. 이산가족들이 임진각에 남긴 쪽지 사연을 보고 아무도 모르게 남과 북의 메신저 역할을 풍산개는 묵묵히 자임하는 남자입니다.

 

'산'은 임진각의 쪽지를 보고 이산가족의 소원에 따라 남에서 북으로, 혹은 그 반대로 북에서 남으로 유품을 전달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천만하지만 이산가족을 데리고 와 상봉시켜 주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는 영화 <풍산개>를 보시면 충분히 수긍이 가시리라 믿습니다.

 

배우 윤계상의 연기력 

배우 윤계상은 <범죄도시>(2017)에서 악역 장첸 역을, <말모이>(2019)에서 주연 류정환 역을 맡아 비로소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풍산개> 개봉 당시만 하더라도 부정확한 발음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많았던 배우였습니다. 

 

그런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풍산개>에서 윤계상이 맡은 배역은 러닝 타임 120분 통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주인공 '산'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배우 윤계상은 영화가 상영되는 120분 동안 말한마디 하지 않고도, 남과 북을 오가는 절절한 메신저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표현하며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오직 그 강렬한 눈빛 하나만으로요!

 

영화 풍산개 공식 포스터

 

풍산개를 만난 인옥의 비애

그러나 <풍산개>에서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던 풍산개가 국가정보원의 레이더망에 포착되고 남과 북, 각각의 정보기관에 이용당하게 되면서 비극적인 내러티브가 전개되기 시작됩니다.

 

풍산개는 남에 망명한 북측 고위인사의 간절한 부탁으로 그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평양에서 서울로 데려오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는 비극의 단초가 됩니다.

 

한밤, 알몸으로 도하하는 윤계상과 김규리. 이 영화는 당근 청불 등급이겠죠?

 

풍산개와 인옥이 전라의 몸으로 비무장지대의 개울을 건너는 장면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서스팬스가 넘치는 이 영화 최고의 백미입니다. 발각될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두 남녀가 컴컴한 어둠을 타고 알몸으로 도하하는 에로틱한 상황은 보는 이의 심장 박동을 빠르고도 강하게 두드립니다. 

 

인옥은 어쩌면 풍산개의 그 말없는 등짝에 그녀 인생 모두를 맡기고 위험스러운 개울을 건너올 때가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의 비극에 견주어 보면.

 

비린내 나지 않는 사랑

인옥을 만난 북측 고위인사가 풍산개와 그녀 사이에 무엇인가가 '불꽃'이 튀었음을 직감하면서 영화는 급하게 불행으로 급반전하기 시작합니다. 인옥과 풍산개의 슬픈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고, 둘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그냥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길 수 있을 뿐입니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이후의 시나리오를 대충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풍산개 역을 맡은 윤계상은 이 영화에서 야생의 그 '풍산개'같은 날 것의 이미지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풍산개에게 인옥은 풍산개의 피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인간, 그리고 말에 대하여

그렇다면 영화에서 풍산개가 상정하는 존재는 무엇이었을까요? '풍산개'는 인간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데는 정작 말이 필요치 않음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풍산개처럼 '말할 수 없음'이라는 상황에 종종 처할 수 있는 비극적 존재라는 점을 영화 <풍산개>는 상기시킵니다.

 

풍산개가 말이 많은 존재였다면 비무장지대를 그렇게 자유롭게 넘나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영화가 끝날 때쯤 관객들은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언어는 종종 비무장지대와 같은 인위적인 장벽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말이 필요 없는 '풍산개'에게는 그것이 결코 장벽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SNS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말을 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 벽이 더욱 굳어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비무장 지대

<풍산개>는 '남과 북' 사이에서만 비무장지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비무장지대가 가로막고 있음을 암시하는 영화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에 있어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풍산개는 인옥에게 말을 하지 않고서도 사랑을 말했습니다. 반면 인옥의 애인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진심 어린 사랑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는 너무 가볍고 편리한 말로만 오늘은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풍산개가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도 단 한마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은 진정한 소통의 부재란 무엇인지 성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풍산개>를 보고서 마음속에 존재하는 비무장지대를 허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벽의 해체는 교활한 언어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만이 허물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주는 듯합니다.

 

남과 북의 요원들이 풍산개의 아지트에서 대결하는 장면은 인간의 언어에 대한 역설을 풍자하는 장면으로 비추어집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서로는 서로의 말을 결코 알아들 수 없는 몹시도 난처한 상황 말입니다.

 

김기덕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한 <풍산개>의 제작비는 불과 2억 원이었습니다. 촬영 기간도 2010년 11월 13일부터 12월 23일까지 한 달 남짓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도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풍산개 에필로그

불과 3년전이었던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위해 만난 두 정상이 오후 4시 36분부터 약 30분간 청량한 새소리 지저귀는 도보 다리를 거니는 장면에 전 국민이 열광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한반도에는 말도 안 되는 LH 땅 투기바람에 휩쓸었고, 주인이 바뀐 백안관의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4월 29일, 북한이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포스팅도 4월 27일 발행하려고 하였으나 놓쳐버렸듯이 2018년 4월 27일을 회상하는 언론 매체는 없었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과 북의 관계 또한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풍산개처럼 진정성이 있다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그 길은 결코 멀리 있는 길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판문점에서 나누었던 그 정겹던 '사회주의 포옹'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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