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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소설

체호프 단편선 내기, 세상에 이런 내기를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by 다독다감 2021. 3. 30.

민음사가 2002년 발행한 <체호프 단편선>에는 재미난 이야기들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내기"라는 제목의 단편은 아주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짧은 단편입니다. '내기'는 다른 안톤 체호프의 단편과는 결을 조금 달리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단편 <내기>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캄캄한 겨울밤이었다." 그리고 늙은 은행가가 등장하여 십오 년 전 가을에 자신이 개최했던 파티를 회상합니다.

 

학자와 기자들이 적잖이 포함된 파티 손님들은 흥미로운 주제로 토론을 벌였는데 그중에는 사형에 관한 토론도 있었다고 해요. 

 

사형제도를 윤리적인 측면에서 종신형 제도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이 모아지는 와중에 늙은 은행가는 사형제도가 오히려 종신형보다 더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사형은 단 몇 분만에 죽지만 종신형은 오랜 세월을 질질 끌면서 천천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비인간적이라는 의미로요.

 

그때 스물다섯 살쯤 된 젊은 변호사 한 명이 누가 그에게 사형과 종신형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종신형을 택하겠다고 반론을 폅니다. 어찌 됐든 사는 게 아예 없어지는 것보다야 낫다는 뜻으로요.

 

그때 노 은행가는 노발하여 소리칩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독방에 오 년 동안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이백만 루블을 걸겠소"

 

"그게 만약 진담이라면" 하고 변호사가 이렇게 받아칩니다.

 

"오 년이 아니라 십오 년을 조건으로 내기에 응하겠소"

 

햐, 이렇게 해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가장 바보 같고 가장 황당무계한 내기가 성사된 것이에요! 세상에 이런 내기를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아무튼, 내기에 들어간 두 사람은 실행을 합니다. 노은행가는 자신의 정원 바깥채에 딸린 골방에 젊은 변호사를 감금하고 십오 년형에 들어갑니다. 

 

젊은 변호사는 십오년 동안 바깥채의 문특을 넘을 권리,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보거나 목소리르 들을 권리, 그리고 편지나 신문을 받아볼 권리는 박탈됩니다. 

 

십오 년 동안 젊은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악기를 지니고 있거나 책을 읽고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만 허용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내기에 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런 내기를 혹 제안하실 마음이라도 있으세요?

 

변호사는 투자자로서는 현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리스크가 너무 큰 게임 같지 않습니까? 2백만 루블의 현재가치를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겠지만 변호사이니까 15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또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어 그의 잠재 소득가치가 15년 후 2백만 루블을 거뜬히 상회할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변호사는 무모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만약이라도 그가 15년을 버티어낼 수만 있다면 2백만 루블이라는 이득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 은행가는, 게다가 은행가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내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기더라도 승리의 쾌감? 이외에는 그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15년 동안 그를 먹여주고 감시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 쌓여있을 것입니다.

 

자, 어찌 되었든 이제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내일 열두 시면 젊은 변호사는 자유를 얻을 것이고 노 은행가는 내기대로 이백만 루블을 지불해야되는 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15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안톤 체호프가 파노라마처럼 묘사하는 문장들을 보면 젊은 변호사는 지상의 거의 모든 지식들을 섭력하여 (마치 영화 루시처럼!) 인간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거의 신의 경지에 올라 선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그간 투자를 잘못하여 파산 직전이 된 노은행가는 내일이 오기 전에 나쁜 마음을 품고 몰래 변호사가 감금된 방으로 향합니다. 노은행가는 책상 위에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의자에서 잠들어 있는 변호사를 발견합니다.

 

"(···)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한때 천국을 꿈꾸듯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이백만 루블을 거부하겠다. 그 돈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기 위해 나는 약속한 기한이 다 되기 다섯 시간 전에 여기에서 나갈 것이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계약을 파기하는 바이다...."(145쪽)

 

세상에 이럴 수가! 물론 저는 이백만 루블이 하찮게 보일 정도로 득도를 하지 않았기에 변호사의 수준을 도저히 짐작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불과 다섯 시간을 남겨두고 이백만 루블을 걷어차버리고 그냥 나가버리다니!

 

안톤 체호프의 이 짧은 내기 단편 소설은 많은 상념에 빠지게 합니다.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 돈은 무엇인지, 체호프의 단편 "내기"가 던지는 역설은 매우 오랫동안 저를 불편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언제가 죽음의 순간이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그 순간의 시선으로 지금의 순간을 되돌아본다면 지금 이 순간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 이토록 나를 괴롭히며 잠못들게 하는 번뇌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나에게도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을까요? 그리고 '득도'한다는 것, 삶을 초월하여 산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만든 단편 체호프의 "내기"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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