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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공감

대패 삼겹살의 정치 경제학

by 다독다감 2021. 7. 5.

비가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렸다. 어제도 그렇게 비가 온 것 같다. 그제도 왔었나? 모르겠다. 요즘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꿀꿀한 날씨에 마음도 덩달아 꿀꿀했다. 하여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대패 삼겹살.

 

바람이 불고 비오는 거리를 W와 우산을 받쳐들고 대패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누군가 우릴 봤으면 좀 처량했을 것 같다. 우리가 대패 삼겹살 집에 간 사연은 이렇다. 

어제, 콘퍼런스 참석차 Y가 제주 아일랜드에 갔다. 공항까지 태워다 줬다. 동석한 일행에게 그래도 몇마디를 해야겠다 싶어 영어로 토킹하자 혀가 꼬였다. 

 

어젯밤 Y가 제주 흑돼지를 맛있게 멋었다며 인증샷을 날렸다. 그걸 본 W가 참지 못하고 아, 우리도 내일 대패 삼겹살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이런, 대패 삼겹살이라니!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비가 계속 내렸고 H는 외식을 한다고 했다. 셰어하우스 멤버 중 별볼일 없는 둘만 남았다. W와 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섰다. 무엇보다 주방 담당인 내가 밥상을 차라기가 죽도로 귀찮은 것도 한몫 했다.  

 

선명한 피빛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대패 삼겹살

대패 삼겹살은 기본이 5인분부터 시작한다. 1인분에 100그램, 2천5백원이다. 한우에 비해 십분의 일 가격이고 일반 삼겹살에 비해도 사분의 일 가격이다.

 

W는 입맛이 정말 저렴하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삼겹살보다 대패 삼겹을 좋아한다. 나는 아직도 W에 대한 이해도가, 친구이지만은 너무나도 낮을 수밖에 없다.  

 

나이키가 뭔지도 모르고 자동차 메이커도 뭐가 있는지 도통 모른다. 그러니 아이돌도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친구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데, 오늘 아주 구체적으로 대선 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오, 맙소사! 

 

일단, 대패 5인분에 소주 한 병과 콜라 1캔을 주문했다. W는 술을 먹지 못했으므로 소주는 내 차지다. 만약 Y와 왔다면 소주를 서로 많이 마시려고 티격태격 했으리라.

 

대패 삼겹살은 하나하나 제대로 펴서 구워야 제맛이다.

대패 삼겹살에 오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쫙 펴서 굽는다. 그래야 빨리 익고 맛이 있다. 그런데 힘들다. 5인분만 구워도 팔이 저린다. 대개 사람들은 돌돌 말린 대패 삼겹살을 불판에 한꺼번에 올려 놓고 굽는다. 그래야 안 귀찮다.

 

그런데 그렇게 구운 대패 삼겹살은 먹어보면 맛이 없다.

 

돌돌말린 대패 삽겹을 쫙 펴서 구워려면 품이 많이 들어가니까 한 사람은 한동안은 굽는데 전념해야 한다. 나는 열심히 굽기만 하고 W는 열심히 먹고 있으면 가끔 옆 테이블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어떻게 저렇게 구울 수가 있지?

 

대패 삼겹살은 냉동 상태의 삼겹살을 기계칼로 매우 얇은 두께로 썰어낸 걸 말한다. 지역에 따라 그 두께가 다 다르다. 우리 동네 대패 삼겹살은 두께가 얇아도 너무 얇다.

 

무엇보다 대패 삼겹살은 맛이 없다. 냉동 식재료가 다 그렇다 오래 냉동 보관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고기맛을 봐야 하는 서민들은 대패 삼겹살이라도 찾아서 먹어야 한다.

 

원래 대패 삼겹살은 1980년대부터 서민들에게 인기였다. 기억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정사각형의 얇은 냉동 삼겹살이었다.

 

그런데 대패 삼겹살을 백종원이 개발했다며 상표 등록을 한 사단이 옛날에 있었다. 참, 나빴다. 지금도 난 백종원 레시피는 믿고 거른다.

 

W는 삼겹살에 구운 김치를 좋아하고 난 콩나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마늘의 영양학적 가치를 떠나 저 비주얼을 좋아한다.

불판에  익어가는 노릇노릇한 마늘도 좋아한다. 마늘이 정력이나 원기를 보하는 강장제라서 좋아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마늘과 양파 집산지에서 태어난 게 죄다.

 

어렸을 때, 배는 배고픈데 먹을 게 없으면 양파를 빵처럼 먹곤 했다. 그러면 Y와 W는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바보야, 라면이라도 먹지 왜, 하는 표정이다.

 

W와 Y, 상당한 나이차가 있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며 그저 편하게 지낸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눈쌀을 찌푸린다.

 

내가 술이 조금 오르자 W가 다시 채근했다. 지금 거명되고 있는 여야 대선 후보에 대하여 평을 해보라구! 오 마이 갓. 사장님 여기 소주 한병 추가!

 

(참고로 식당에서 이모니 삼촌이니 하는 사람들 보면 오글 거린다. 심지어 오프라인 아닌 온라인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삼촌이니 이모니 하는 족속들이 있다)

 

글쎄, 난다 긴다했던 김종필이도 국무총리 스펙으로는 실패했어. 그러니, 국무총리한 사람들은 집에 가라 그래. 글구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한 사람도 똑 같아. 안은 새정치 한다고 그랬고 윤은 큰 정치한다고 그러는데 뭔 구름잡는 DOG 소리인지 모르겠다. 

 

윤은 두 달 버티기도 어려워. 아, 그리고 재명이가 지금 여권에서는 1등 하는데, 변호사 출신이라는 게 걸려. 한국만큼 사법부가 다 해 쳐먹는 나라도  지구상에 없잖아.

 

시사 패널이나 심지어 예능 프로에서도 온통 사법부 출신들이 다해먹잖아. 신물 나~. 아무리 사법부 특혜를 누려본 적 없는 인사라고 해도 말이야, 국민들은 판검사나 변호사라고 하면 신물이 날 걸.

 

오, 그럼 경제통이 새 시대를 연다는 말? 아니지 하며 막 열을 올리려는 순간, 식당 사장님에게서 쫒겨났다. 시골 식당은 밤 열시가 되면 어김없이 문을 굳게 닫는다. 

 

맛 있었던 된장찌개도 사진으로 보니 거품이 끼었다.

그래도 된장찌개는 먹고 나왔다. 음, 고깃집 된장찌개는 언제나 맛있다. 두부와 애호박, 고추 그리고 된장만 들어간 것 같은데 내가 끓이면 이런 맛이 안난다. 아브라빌리티 주방장으로서 위신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식당에서 쫒겨나 아무튼 각자 좋아하는 맥주와 콜라 펙을 하나씩 손에 들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걸으며 집으로 왔다. 아마 이때도 누가 봤으면 완전 처량한 몰골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 W를 위해 한마디를 안할 수 없었다. 

 

"헤이, 영 가이, 정치꾼은 말이야. 다 똑같은 넘들이야.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말이야, 노 프라블럼! 태극기 부대이든 대깨문이든, 지들 인생에 도움 1도 되지 않는데 그 난리들이야. 대통령에 최고 좋은 놈이 되든 최악의 나쁜 놈이 되든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오차범위 내야. 그래서 정치에 열 올리는 것만큼 한심한 넘도 없다는 말이야~"

 

어제 공항에 그 친구들을 데려다 준 이후에 혀꼬이는 말들이 자꾸 튀어 나왔다. 고맙게도 Y가 제주에 가면서 컴을 오픈해 주었다. 덕분에 엄청 빠른 컴의 신세계에서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다.

 

Y의 룸에서 맥주를 마시며 의기양양하게 포스팅을 하고 있는 데, W가 기어코 한마디 했다.

 

"헤이, 유랑 나랑, 정치경제 말고 이야기할 접점이 없잖아. 그래서 한 건데... 글구 Y의 룸에서 그렇게 술 퍼마시면서 컴을 하는 건 꼴볼견인 거 같은데..."

 

아~ 그래, 니 말이 백퍼 맞다. 오늘도 비가 엄청 쏟아붓는 밤이다. 오늘은 Y가 어떤 톡을 보내올지 은근 기대된다. H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브라빌리티장으로서 멤버들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참, 그리고 정치가는 모름지기 대패 삼겹살 같아야 한다. 저렴하면서도 너무 오래 되지 않아 식감이 살아야 있어야 한다. 서민들은 냉동 식품이든 신선 식품이든 가리지 않는다. 가성비가 맞으면, 그냥 배 부르게 먹을 수 있으면 찍어준다.

 

나처럼 무식한 사람도 있으니 니 공약을 쉽게 말해라. 내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시대정신이니 뭐니 어렵게 말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나한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줄께" 이렇게 쉽게 말해 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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