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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레터스

택시 드라이버, 조디 포스터와 로버트 드 니로를 스타덤에 올린 1976년 고전 영화

by 다독다감 2021. 7. 3.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두 번째 작품 <택시 드라이버>(1976)는 세상과 불화하는 처절한 소외와 고독 속에서도 끊임없이 여자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청년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영화다.

 

197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택시 드라이버>는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로 등재되었고 타임지, BBC, AFI 등에서 100대 영화로 선정되었다. 전미 비평가 협회상에서 감독상(마킨 스콜시즈)과 남우 주연상(로버트 드 니로), 여우 조연상(조디 포스터)을 수상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열연한 조디 포스터

열두 살 거리의 여자 아이리스 역을 맡은 조디 포스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영국 아카데미에서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조디 포스터의 나이 14세 때였다.

 

스콜시즈 감독의 데뷔작 <비열한 거리>(1973)에서 함께 작업했던 로버트 드 니로와 하비 케이틀은 이 영화에서도 그 분위기를 이어받는다. 

 

각본가 폴 슈레이더는 존 포드 감독의 1956년 영화 <수색자>에서 영감을 받아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 탁월한 두 영화의 실루엣은 겹친다.

 

두 영화의 주인공 트래비스와 존 웨인은 다 같이 여자를 구출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강박을 가졌다. 그 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택시 드라이버 공식 포스터

 

택시 드라이버 줄거리

소외와 고독의 표상 트래비스

스물여섯 청년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는 1973년 5월 해병대를 명예제대했다. 불면증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밤새 돌아다닌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택시 기사나 하면서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트래비스는 택시 드라이버가 된다.

 

트래비스는 택시회사 인터뷰에서 자신의 마음씨처럼 운전면허 위반 기록도 깨끗하고 몸도 건강하다고 말한다. 불면증 때문에 야간 근무를 원하며 근무시간은 될 수 있으면 길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밤에 일하기를 좋아한다. 

 

그가 5월 10일에 쓴 우울한 일기는 로버트 드 니로의 래레이션으로 전달된다.

 

비가 거리의 쓰레기를 깨끗이 씻어내린다. 근무시간은 오후 6시부터 아침 6시, 가끔은 8시까지. 주 6일에서 7일을 일한다. 힘들긴 해도 할 일이 있다. 주 300~350달러 수입에 미터기를 안 꺾으면 더 벌 수도 있다. 쓰레기는 밤에 쏟아져 나온다. 매춘부와 (···) 인간 말종 들이다. 언제가 저런 쓰레기를 쓸어갈 진짜 비가 쏟아질 것이다. 

 

트래비스는 다른 택시 기사와는 달리 언제 어디든 상관없이 간다. 밤이든 휴일든 빈민가든 흑인 손님도 가리지 않는다. 브룽크스, 브루클린, 할렘까지 개의치 않고 간다. 그의 목숨마저도 그와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태도다.

 

매일 밤 차고로 돌아오면 트래비스는 뒷좌석에서 손님들이 흘린 물들을 닦아낸다. 피를 닦아낼 때도 있다. 트래비스는 그것들을 무표정한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처리한다.

 

트래비스를 밀어내는 여자들

쇼 앤 텔의 안내원

트래비스는 소외 속에서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자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 그의 노력은 그러나 매번 수포로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트래비스가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첫번째 여자는 쇼 앤 텔의 데스크의 안내원이다. 트래비스는 그녀에게 이름만 알려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녀는 매니저를 부르며 그를 사납게 쫓아낸다.

 

쇼 앤 텔은 트래비스가 자주 가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를 상영해주는 싸구려 극장이다. 1970년대 뉴욕 42번가에는 이러한 싸구려 극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트래비스는 단골손님이었지만 안내원은 변태 취급함으로써 무안을 준다.

 

스코시즈의 촬영감독 마이클 채프먼은 노란색 택시로 트래비스가 뉴욕 밤거리를 유영하는 장면들을 탁월한 슬로모션으로 영상화했다. 

 

트래비스의 노란색 택시는 밤거리의 여자들과 남자들이 서로 희롱하는 무리들을 슬로모션으로 훑으며 유유히 달린다. 도롯가 소화전에서 터져나오는 물을 튕기고 길거리 통풍구가 내뿜는 증기를 통과하며 달리는 장면들은 1970년대 뉴욕 밤거리의 서정적인 고고학이 되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벳시

벳시 역의 시빌 셰퍼드

트래비스가 관심을 받고 싶어 한 두 번째 여자는 대선후보 팰런타인 선거본부에서 일하는 벳시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벳시는 트래비스에게 쓰레기 같은 뉴욕에서 눈부신 천사로 각인된다.

 

누구도 벳시를 손대선 안 된다고 생각한 트래비스는 마침내 말쑥하게 차려입고 선거본부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의 속마음을 속사포처럼 털어놓는다. 

 

팰런타인 선거 운동 본부에서

그가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며, 외로워 보인다며, 지날 때 보면 주위에 사람들도 많고 전화기도 물건도 많지만 그런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벳시가 호기심을 가지며 야릇한 반응을 보인다.

 

트래비스는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여기 들어와서 당신 눈빛과 행동을 보니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뭔가가 필요하다고. 친구가 필요하면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벳시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트래비스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인다.

 

벳시는 처음 얼마간 트래비스에게 빠져든다.

5월 26일 오후 4시. 트래비스는 벳시를 콜럼버스 서클의 찰스 커피숍으로 데려간다. 벳시는 커피와 과일 샐러드를, 트래비스는 블랙커피에 치즈를 얹은 사과 파이를 먹으며 "눈이 참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며 연정을 쏟아낸다.

 

우린 서로 강하게 끌리고 있다고 느꼈다고. 그래서 자신 있게 말을 건넨 거라고. 그런 걸 못 느꼈으면 말조차 못 했을 거라고. 당신도 느끼나요?라는 물음에 벳시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서 여기 왔죠."라고 대답한다.

 

트래비스는 그녀와의 며칠 후 데이트에서 그녀를 쇼 앤 텔에 데려간다. 그러나 벳시는 어른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나가버린다. 그 뒤로 트래비스가 전화를 하지만 벳시는 그를 완전히 밀어내고 만다.

 

어린 아이리스 

열두살 거리의 여자 아이리스 역의 조디 포스터

트래비스가 친해지고 싶었던 마지막 여자는 열두 살 아이리스였다. 거리의 여자 아이리스는 스포트(하비 케이틀) 밑에서 일한다. 스포트는 인디언 머리띠를 두르고 여자를 찾는 남자들을 아이리스와 연결해준다. 

 

하비 케이틀과 로버트 드 니로 스틸컷

어느 날 울면서 자신의 택시에 올라탄 아이리스가 스포트에게 끌려가는 것을 본 트래비스였다. 거리에서 우연히 아이리스를 다시 만난 트래비스는 찰스 커피숍으로 그녀를 데려가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트래비스에게 어쩡쩡한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리스

<택시 드라이버>는 단 하나의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트래비스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아이리스가 스포트를 싫어하는지, 트래비스를 믿을 만한 남자로 여기는지는 잘 밝혀지지 않는다. 

 

아이리스와 친해지려 다가가는 트래비스

아이리스와 스포트가 함께 있는 장면이 영화의 유일한 3인칭 시점이다. 아이리스가 스포트에게 "나한테 관심을 기울이지 않잖아요"라며 울먹거렸을 때 관객들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아이리스가 트래비스를 바라보는 묘한 눈빛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택시 드라이버에서 배역만큼이나 조숙했던 조디 포스터

이 장면은 각본을 쓴 폴 슈레이더가 영화의 시점 흐름을 흐트린다며 반대했으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끝까지 고수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아이리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아이리스와 스포트는 연인관계이며 그를 원하고 있는 그녀의 속마음을.

 

트래비스의 세계관

어느날 우연히 그의 택시에 올라탄 대통령 후보 팰런타인에게도 트래비스는 아첨을 떤다. 그러나 팰런타인 또한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트래비스의 말을 듣고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하는 표정. 일단 우리도 트래비스의 말을 들어보자.

 

이 도시는 좀 치워야 해요. 이곳은 하수구 같아서 온갖 쓰레기들이 넘치거든요. 가끔 진절머리가 나요.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치워줬으면 좋겠어요. 어떨 때는 쓰레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두통이 나거든요. 두통이 사라지질 않아요. 대통령이 화장실 X물을 내리듯 말끔히 씻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마침내 트래비스는 세상을 스스로 구원하기로 결단한다. 네 자루나 되는 총을 구해 몸만들기에 돌입한다. 밤에 꼬박 일하고도 낮에도 잠을 자는 듯 마는듯하다. 장기적인 불면은 만성적인 두통으로 사리 분별이 흐릿해지며 미쳐가게 만든다. 

 

트래비스가 본격적으로 몸만들기를 하며 거울을 보며 혼자 독백을 하는 장면이 있다. 대본에는 없었으나 로버트 드 니로가 애드리브를 친 대사인데 그게 불멸의 명대사가 되었다. 

 

로버트 드 니로의 고독에 지친 표정을 보라

"나한테 얘기하는 거야? 글쎄, 여기 나밖에 없는데."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었던 트래비스는 그들의 커뮤니티에 진입하려고 애썼으나 빈번히 실패하고 만다. 그를 만난 여자들은 모두 그를 밀어내기만 했다. 소외와 고독으로 점철된 그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할 수밖에 존재가 되었다. 대화 상대방은 언제나 그 자신이었다.

 

결말(스포일러)

드디어 트래비스는 아이리스를 구원하기로 결심한다. 트래비스는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서 가장 유혈이 낭자한 난투극을 벌이며 아이리스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모히간 헤어스타일을 하고 때를 엿보는 로버트 드 니로

스포트를 비롯한 일당 4명이 모두 트래비스의 총에 맞아 죽었다. 처참하게 죽은 네 명의 일당을 카메라가 천장에서 붉은 조명을 더하며 내려다보는 오버헤드 숏은 미사에 바쳐지는 최후의 재물을 보는 듯한 장렬한 서사가 감돈다. 스코시즈 감독이 말한 이른바 '사제 시점 장면'이다. 

 

총에 맞았던 트래비스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병상에 누워있는 트래비스에게 아이리스의 부모인 스틴 스미스 부부가 딸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와 트래비스의 영웅적 행위를 묘사한 신문 스크랩을 보내온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는가 싶을 즈음 카메라는 택시회사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트래비스를 비춘다. 그리고 그의 택시에 벳시가 올라탄다. 벳시는 예의 벌레 먹은 표정이 아닌 존경하는 듯한 눈빛으로 트래비스를 바라보며 내린다. 노란색 택시가 다시 뉴욕 거리를 서서히 달리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마틴 소콜세지 감독 영화들

 

영화 좋은 친구들, 마피아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이야기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1990)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지금 봐도 꿀리는 영상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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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영화 순수의 시대, 미셸 파이퍼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순수의 시대>(1993)은 미국 소설가 이디스 워튼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이디스 워튼은 이 소설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가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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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택시 드라이버의 결말 부분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다. 트래비스는 병원에서 죽었으며 벳시가 택시를 타는 장면은 트래비스의 환상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벳시에게 꽃을 보낸 것도, 베시와 통화하는 장면도 트래비스의 망상이라고 해석하기까지 한다. 트래비스가 벳시와 통화할 때 카메라가 비춘 휑한 복도는 트래비스의 고독한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이 영화 대부분이 트래비스의 망상 세계가 되고 만다. 이에 대해서는 각본가와 감독 모두 기각했으니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관객들의 몫이 되었다.

 

택시 드라이버는 <수색자>와 이어서 보면 좋다. 수색자의 존 웨인과 어린 조카 데비(나탈리 우드)는 이 영화에서 트래비스와 아이리스와 등치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독한 두 영웅은 어린 여자를 구원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하는 트래비스

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데뷔작 <비열한 거리>와 이어서 봐도 의미가 선명해진다. 비열한 거리에서 하비 케이틀은 촛불과 성냥불에 손가락을 계속 집어넣으며 지옥불을 시험했다. 로버트 드 니로는 가스 불에 자신의 주먹과 손목을 담금질하길 멈추지 않는다.

 

택시 드라이버 스틸컷

<택시 드라이버>는 세상과 남들처럼 관계 맺지 못하고 현실 부정응자로 낙인찍힌 한 사나이의 영혼에 바치는 헌정이다.

 

1960년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1975년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 영화는 1976년 만들어졌다. 시대적 배경은 이 영화를 깊이 음미하는데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 인간관계에 부드럽게 섞여들지 못하는 예민한 존재는 늘 있어 왔듯이 말이다.

 

밤낮이 바뀐 세계에 살면서 세계와 불화하고 외로움에 떨며 구원을 꿈꾸는 영혼이 있다면 거센 바람이 불고 온종일 비가 몰아치는 오늘 같은 밤, 이 영화를 보시길 추천한다.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몰입도 높은 고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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