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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레터스

영화 연인 줄거리와 결말, 제인 마치 양가휘 주연의 가슴 저미는 비애

by 다독다감 2021. 6. 13.

비극적인 사랑, 20세기 최고 센세이셔널 로맨스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가 1984년 발표한 장편소설 <L'Amant (The Lover)>을 원작으로 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1992)은 사랑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로맨스 영화입니다.

 

소설 <연인(L'Amant)>은 35개 국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영화 <연인>은 제인 마치와 양가휘를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았습니다.

 

영화 <베어>, <장미의 이름>, <티벳에서의 7년>을 연출한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듣는 대표적인 프랑스 영화감독입니다.

 

영화 <연인>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베트남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반항기 가득한 열다섯 살 프랑스 소녀와 30대 후반의 부유한 중국인 청년입니다. 영화 <연인>은 10대 소녀와 30대 청년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린 수작입니다.

 

열다섯 살의 프랑스 소녀는 다름 아닌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자신입니다. <연인>만큼 자전적인 소설도 없을 것입니다. 프랑스 여류 작가들은 놀랍도록 자아를 적나라하게 노출한 연애소설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뒤라스는 1914년 베트남 지아딘에서 태어났습니다. 수학 교수였던 아버지가 풍토병에 걸려 죽자 뒤라스는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 곳곳을 전전하며 열악한 환경속에서 10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1933년 프랑스로 귀국하여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식민지청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퇴직했습니다. 첫 소설 <철면피들>(1943)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라스는 알랭 레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 작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의 고통 속에서도 뒤라스는 <연인>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 공쿠르 상을 수상했고, <글쓰기>와 <이게 다예요> 등 40여 권의 작품을 남기고 1964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마스터링 영화 포스터

 

영화 연인

영화 <연인>은 유려한 영상미로 20세기 가장 센세이셔널한 로맨스라는 호평과 노골적인 영화라는 악평도 함께 따라붙었습니다.

 

백인 소녀와 동양 남성이라는 설정 외에 악평의 근원은 주인공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라는 것과, 촬영 당시 주연 배우 제인 마치가 열아홉이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찾아볼 것이 딱히 없습니다. 영화 <연인>이 영상화한 러브신만큼 아름다운 영화도 찾아보기 어려우니까요.

 

이팔청춘이라는 말이 있듯 아마도 경험해보신 분들은 그 나이 때의 사랑이 가장 순수하다는데 동의하실 겁니다. 그 나이가 지나고 나면 사랑은 단지 관념 속에 머물 수밖에 비운의 운명이라는 것을.

 

요즘 밤마다 한 꼭지씩 읽고 있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주인공보다 세 살이나 많은데 세상 어른들의 평가는 언제나 꼰대스럽기만 합니다.

 

연인 줄거리

영화 <연인>은 열다섯 살난 제인 마치가 방학을 마치고 기숙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호찌민으로 가는 메콩강 배 위에서 양가휘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떠날 때와 양가휘를 처음 만날 때의 제인 마치는 같은 의상,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amp;nbsp;

낡은 원피스를 걸친 제인 마치가 선상 난관에 기대어 선 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뭍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에로틱한 장면들의 시작을 알립니다.

 

남성 중절모를 쓴 제인 마치가 그리움이 묻어나는 눈동자로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넋을 잃고 선착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자태에서 거부할 수 없는 관능이 묻어납니다. 속옷 하나 입지 않은 맨몸에 걸친 원피스는 에로티시즘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황톳빛 출렁이는 메콩강에 멀리 배들이 오가고 쪽빛 하늘 아래 한눈에 봐도 귀티가 흐르는 30대 청년 양가휘가 그녀를 묵묵히 바라봅니다. 이 두 연인의 만남은 운명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운전 기사들 대동한 양가휘는 검은색 고급 자동차로 어린 백인 소녀를 기숙학교까지 데려다줍니다. 가는 동안 뒷좌석에서, 남자의 오른손과 여자의 왼 손이 운명의 자석처럼 떨리는 장면 또한 에로틱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양가휘와 제인 마치의 표정을 보라! 사랑이란, 저렇게 운명처럼 왔다가 느닷없이 존재를 거침없이 함몰시키켜 버린다는 것을. 욕정을 억누르며 서로의 손마디를 어루만지는 간절함이란.

 

기숙학교로 돌아온 제인 마치는 유일한 백인 친구 엘렌에게 양가휘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밤을 보냅니다. 두 소녀에게 타국에서 낯선 남자와의 로맨스는 문자 그대로 동화 속 백마 탄 왕자의 이야기가 됩니다.

 

사랑은, 특히 국외에서 경험한 사랑은 곧장 몽환적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은 실존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놀랍도록 실존을 비추는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합니다.

 

뒤라스처럼 열다섯 나이에 국외에서 한 첫경험은 상상을 초월하는 데가 있습니다. 작가 뒤라스가 일흔이 되어서도 연인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을 보면요.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그때까지 소설 <연인>을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제인 마치는 동급생으로부터 중국인에게 몸을 파는 걸레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조금도 사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양가휘의 자동차를 타고 제인 마치는 차이나타운 시장 골목길을 당당하게 지나 독신남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제인 마치의 저 당돌한 자태에는 어느새 사랑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양아치 같은 오빠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런 오빠에게만 올인하는 경멸스러운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서, 낯선 남자와 자고 싶다는 그 나이 때의 막연한 성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육체적인 관계는 점점 사랑으로 도약해 갑니다.

 

제인 마치가 사랑의 댓가로 적잖은 돈을 받아오자 경멸스러운 어머니는 학교에 찾아가 딸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도록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소녀는 가증스러운 가족과 연인을 경멸하면 할수록 더깊이 부유한 중국 청년에게 빠져듭니다. 이 정체 모를 감정은 훗날 프랑스로 돌아가는 알렉산드로 뒤마호에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제인 마치와 양가휘가 독신남의 방에서 나누는 사랑은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영상미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러브신으로 손꼽히는 장면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낯 시장통의 웅성거림과 채광이 스며든다는 점에서 영화 <색, 계>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관능의 질감이 도드라지게 잡아냈습니다. 

 

연인 결말

처녀 아닌 자와 결혼할 수 없고, 백인 여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중국 관습에 굴복하여 양가휘는 아버지의 명대로 부유한 중국 여자와 결혼하게 되지만, 소녀는 결코 운명과 미래에 낙담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몸을 탐닉하던 연인은 현재의 감각에 충실할 뿐, 미래는 그들의 몫이 아니란 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가휘는 제인 마치가 프랑스로 떠날 수 있도록 묵묵히 뒤를 봐줍니다. 부동산 사기로 아버지의 유산을 전부 날려버린 어머니와 아편쟁이 오빠의 빚을 모두 청산해주고 프랑스 여행 경비까지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알렉상드로 뒤마호 배 갑판에서 제인 마치는 예의 그 자세로 멀리 검은색 자동차가 서 있는 선착장을 바라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뒷좌석에서 연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선착장이 멀어지며 한 점으로 변해가고 항구마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알렉상드로 뒤마호가 인도양을 건너던 어느날 밤, 쇼팽의 왈츠 선율이 갑판을 물들일 때 소녀는 콜론에 있는 그가 생각나 눈물을 터트리고 맙니다. 모래에 스며든 물처럼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걸 소녀는 비로소 온몸으로 실감하고 격하게 몸을 떱니다.

 

강렬했던 사랑의 감정은 한참 후에야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도 이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볼수록 더 좋은 영화가 있다면 아마도 영화 <연인> 일 것입니다.

 

그후, 소녀는 전쟁을 겪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이혼하고 작가로서 성공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파리에 온 연인은 불안하고 떨리는 예의 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옵니다.

"예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사랑하고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며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고.."

 

자막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영화 <연인>의 라스트 신입니다. 사랑은 꼭 완성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영화 연인은 말합니다. 오히려 완성되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어쩌면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에필로그

영화 <연인>은 여름 영화입니다. 1992년 여름, 6월 20일 개봉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이 찾았습니다. 2016년 8월 재개봉했을 때는 제인 마치처럼 중절모를 쓰고 극장을 찾은 여성분들도 많았습니다. 넷플릭스에도 공개되어 있으니 여름 밤,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인의 실제 인물은 중국 거상이었던 아버지의 반대로 뒤라스와 헤어진 후 중매로 결혼하여 자녀 다섯을 낳아 모두 프랑스 유학을 보냈습니다. 오래전 베트남에 갔을 때는 유감스럽게도 못 찾았지만, 그가 살던 동서양 퓨전풍 고급 저택이 남아 있어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궁전 같이 아름다운 집이었으므로 다시 가면 찾을 듯도 합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어린 시절 사진을 표지로 실은 소설 1985년판 <연인>입니다. 영화 <연인> 포스터는 1985년판 책 표지를 패러디하여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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