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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소설

은교, 노년의 사랑과 욕망을 탐구한 박범신 장편소설

by 다독다감 2021. 6. 10.

박범신의 소설 <은교>(문학동네, 2010)를 조금씩 다시 읽어 나갔다. 박범신 작가는 '밤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밤에만' 읽기를 바란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모티콘이나 줄을 마구 바뀌어 써버린 문장들이 눈에 거슬렸고, 늘어지는 듯한 얼개가 흐름을 끊었다. 영화 <은교>(2012)에서 이적요와 서지우의 내면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그나마 소설 <은교>는 그 미진함을 채웠으니 읽을 만했다.

 

소설 <은교>는 노인의 성(性)을 탐구한 작품이다. 노인도 젊은이들처럼 성적 욕망을 느낄 수 있을까?

 

노인의 성적 욕망을 선명하게 밝혀내기 위하여 박범신은 주인공 이적요를 노(老) 시인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주인공 은교를 열일곱, 여고생으로 설정한다.

 

소설에서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는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삼십대의 곁가지다. 그의 역할은 이적요의 사랑을 도드라지게 하는 불쏘시개에 머문다.

 

이적요의 나이는 아쉽다. 그의 나이는 예순아홉에 불과하다. 칠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연정을 품을 수 있다고 작가는 강변한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이적요의 나이를 열 살쯤 더 높혀 잡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적요와 은교의 나이 차가 52살이 난다는 것이 여기서 논점이 아니다. 사랑은 간혹 그 모든 것을 뛰어넘으므로 예술은 그런 세계를 증명해 내야 한다.

 

이적요는 십대 은교를 처음에는 욕망의 대상으로 느낀다. 은교를 보고 민망하게도 발기하기도 한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매끄럽지 못했으나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은교를 더 깊이 욕망하고, 자신의 욕망에 청년 서지우가 얽혀듬에 따라 이적요의 욕망은 비로소 사랑으로 승화되어 간다는 것이 소설 <은교>의 큰 얼개다. 사랑은 간혹 그렇다. 질투와 시기가 사랑을 추동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애는 그 어느 때보다 치명적이라고 느낄 만큼 관능적이었고, 아무런 방비도 없었다.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욕망은 한껏 당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내 몸은 고요했다.

그것은 고요한 욕망이었다. 한없이 빼앗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내 것을 해체해 오르지 주고 싶은 욕망이었다. 아니 욕망이 아니라 사랑, 이라고 처음으로 느꼈다(310 ~ 311쪽)

 

소설 은교와 영화 은교의 가장 다른 느낌은 이적요와 은교의 사랑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사랑은 묘사 불가능하고 설명 불가능하다. 자기를 왜 사랑하는데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까닭이다. 그 역할은 예술가들이 담당하고 있다.

 

박범신은 해괴망측하고 변태적일 수도 있는 이적요의 욕망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작가 박범신이 내심 바라고 있었던 관렴론적인 욕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은교> 제작 과정에서 튀어나온 논란을 보면.

 

소설 은교의 줄거리는 아래 영화 글을 참조하면 된다. 소설이나 영화, 줄거리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영화 은교 줄거리와 결말, 김고은 데뷔작이자 출세작 넷플릭스 추천

"작가 박범신 장편소설 <은교> 원작, 배우 박해일과 김고은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촬영 당시 20세였던 배우 김고은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자 출세작" "박해일의 노인 분장

abrability.tistory.com

마침내 은교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은 이적요는 자신이 쌓아온 시(詩)의 세계마저도 부정하고 오롯이 은교의 품으로 영원히 귀의한다는 결말이다.

 

<은교>의 결론은 유물적이고 경험론적이었던 이적요가 마침내 관념론자로 전향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늙어서 죽어간다는 것은 분명 비극이다. 그렇다고해서 노인의 욕망을 청춘의 욕망과 다르다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 욕망을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할 까닭도 없다. 먹고사는 인생사,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여 사랑은 고귀한 쪽이든 세속적인 쪽이든 두 가지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소설 <은교>는 사랑을 지극히 관념론적으로 다뤘다. 아마도 작가는 세속적인 사랑을 부정하고 사랑을 고귀한 관념으로 변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쁜 놈이었으나 그 말도 완전히 기각할 성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관념적이든, 경험적이든 대저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했지만 죽은 것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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