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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소설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줄거리와 결말(스포), 히가시노 게이고 신작 소설

by 다독다감 2021. 5. 29.

연재 추리소설 특유의 흥미진진한 리듬감, 히가시노 게이고 복고 미스터리

 

생각이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할 때 무작정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추리소설 읽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소설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2021)를 읽으며 비 오는 하루의 시간을 죽였습니다.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우리나라 번역 출판이 2021년일 뿐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8년 발표한 첫 연재소설입니다.  아마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대사가 유행하니까 이번에 번역 출판하지 않았나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저번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적잖은 감성팔이가 부담스러웠는데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추리소설의 본령에 충실한 작품이라 흔히 말하는대로 책에서 손을 놓지 않고 정주행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 중에서 반전이 가장 돋보이는 소설은 <위험한 비너스>(2017)↗입니다. 반전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추리 소설로 이 소설도 읽어보시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읽힙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일상이 기적과 연결된다는 깨우침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오늘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추리소설은 일본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대박을 쳤습니다. 2012년 12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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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줄거리

호화로운 파티와 컴패니언

여주인공은 교코입니다. 직업은 컴패니언. 신제품 발표회나 페션쇼, 공연장, 백화점 등에서 기업이나 제품을 소개하고 행사를 홍보하는 내레이터 겸 모델을 컴패니언이라고 합니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때부터 생겨난 컴패니언은 1980년대 말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직종입니다. 접객 매너와 외국어가 되는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직업. 소설에서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접객을 하는 늘씬한 미인으로 컴패니언을 묘사합니다.

 

1988년 발표한 소설이니 1980년대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일본의 거품 경제의 광풍을 이 소설에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교코는 주로 호텔 연회를 돕는 컴패니언으로 활동합니다.

 

교코는 도쿄 긴자 거리, 하나야 보석점 쇼윈도에 진열된 화려한 보석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언제가 자신도 값비산 보석을 몸에 두를 수 있는 날이 꼭 올 거라 믿으며 오늘도 일터로 향합니다.

 

난 외국에 별장을 갖는 게 꿈이에요. 유럽의 고성을 사들여 여름이면 거기서 지낼 거예요. 성에는 당연히 보석이 따라줘야겠죠. 전 세계의 보석을 수집해야지. 하나야에서도 잔뜩 주문하고. 그러려면 역시 돈이 필요하잖아요.(203쪽)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교코처럼 보석을 바라보는 오드리 헵번

교코가 컴패니언이 된 것도 그녀의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컴패니언들이 활동하는 행사장에는 돈 많은 남성들이 모여들고, 그중에서 백마 탄 왕자가 될 만한 남자를 잘 찍으면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는 원대한 계획 말입니다.

 

백마 탄 왕자와 살인사건

퀸 호텔에서 하나야 보석점 고객 감사파티가 열리던 날, 교코는 드디어 찜해둔 백마 탄 왕자, '다카미'를 유혹하는 데 성공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라운지에서 그와 차를 마실 때 드디어 다카미가 조금 있다 길 건너편 카페에서 만나자는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다카미는 삼십대 나이에 벌써 부동산 개발회사의 전무에 올라있습니다. 교코는 자신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교코가 퀸호텔 길 건너편 카페에서 다카미를 기다리고 있을 때, 퀸 호텔 203호에서 사체가 발견됩니다. 죽은 이는 다름 아닌 교코의 동료 컴패니언이었던 '에리'.

 

행사 때 컴패니언 대기실로 쓰던 203호에서 문이 안에서 잠겨진 채 주검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발견자는 교코가 소속된 컴패니언 회사 밤비 뱅큇의 사장 '마루모토'. 호텔 관리인 두 명과 마루모토가 203호에 들어갔을 때 맥주를 마시다 만 듯 그녀가 탁자에 엎드려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행사를 마치고 교코는 호텔 라운지에서 에리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는데, 그녀는 왜 203호로 다시 돌아갔으며, 왜 자살을  했을까?

아니면 누가 그녀를 왜 죽였을까? 죽였으면 어떻게 죽였을까?

 

범인은 누구일까?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밀실 살인사건입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니 이때부터 추리소설은 슬슬 끓기 시작합니다.

퀸 호텔 객실은 밖에서 문을 절대 따지 못하니 에리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면 범인은 에리를 죽인 후에 어떻게 감쪽같이 나왔을까? 독자들이 풀어야 할 첫 번째 트릭입니다.

그날 밤 교코가 사는 원룸 옆집으로 담당 형사 '시바타'가 우연하게도 이사를 옵니다. 시바타는 교코에게 에리가 삼각관계를 비관하여 자살한 것으로 수사가 종결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코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삼각관계를 비관하여 자살할 여자가 어디 있냐라고 하자, 시바타도 자신 또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며 독자적으로 수사를 계속할 의향을 내비칩니다.

 

에리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교코와 시바타는 신칸센을 타고 에리의 고향 나고야로 향합니다.

 

연이은 살인 사건

나고야 본가에서 교코와 시바타 형사는 에리에게 화가 지망생이었던 남자 친구 '이세'가 있었으며, 이세는 다카미의 백부를 살인한 뒤에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카미가 용의선상에 떠오르자 교코는 살짝 흔들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왕자님에게 직진합니다. 다카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클래식 음악도 듣고 요리도 배우는 교코를 보면 그녀의 꿈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살짝 짠해집니다.

네, 교코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다카미에게 집중합니다. 하나야 보석점의 셋째남 괴짜 '겐조'가 그녀에게 치근댈 때에도 교코는 한 눈 팔지 않습니다. 심지어 시타바 형사에게 들은 수사 진행상황을 다카미와 공유하기까지 합니다.

그 와중에 에리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던 또 한 여성, 에리의 친구였던 '유카리'가 살해됩니다. 교코는 불안에 떨면서도 다카미와의 만남을 아슬아슬하게 계속 이어갑니다.

 

그녀는 계획이 다 있다 결말(스포)

드디어 시바타 형사는 이세가 남긴 비틀스 노래를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에서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유서를 발견합니다.  이세는 비틀스의 노래 6곡 중에서 '페이퍼백 라이터'라는 곡은 녹음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남기고 그 테이프 이면에 유서를 새겨놓았던 것입니다.

이세의 유서를 요약하면, 무명화가로서 성공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카미 백부의 약점을 잡아 거액을 요구했는데, 다카미 백부가 저항하는 바람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이 범행에 나를 끌어들인 건 X와 Y다. X는 내가 그려 놓았던 초상화 속의 바로 그 자다.

시바타는 이세의 유서 속 X와 Y가 겐조와 마루모토였다는 걸 반증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세가 남긴 초상화에 X선을 비추니 그 밑에 겐조를 그린 초상화가 나타났던 거지요.

 

에필로그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초장기 시절 쓴 작품으로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문법과 규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나중에 범인으로부터 밝혀질 인물들을 소설 초반부에 모두 등장시켰고, 단서도 사건의 진행단계에 따라 형사가 보는 대로 독자도 볼 수 있게 충실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적어도 나중에 독자들의 뒤통수를 칠 사기성 서술은 없었습니다.

다만, 수사상의 헛점은 보입니다. 호텔 객실 잠금장치를 강력 테이프로 위장해 놓았다는 트릭은 조금 어이없었고, 초상화 밑에 다른 초상화가 있다는 걸 간과한 것도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로서는 낙제입니다.

그러나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트릭의 기묘함이나 수사의 철저함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트릭이 신의 한 수였다 거나 하면 오히려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보다는 범인을 좁혀가는 추리과정이 얼마나 치밀한가가 추리소설을 읽는 소소한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손에 땀이 날 지경은 아니었지만 고단한 심신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집필 규칙

이 장편소설을 번역한 양윤옥 여사에 의하면, 1958년생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난 30여 년 동안 해마다 두 권 혹은 세 권씩 거의 끊임없이, 꾸준하게 소설을 발표해왔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긴 호흡으로, 결코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소설 공장장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히가시노 게이고가 푹 빠져 있었던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의식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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