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웨스턴이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웨스턴 걸작 중의 하나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진 핵크만, 모건 프리먼이 주연으로 출연한 <용서받지 못한 자>는 작품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편집상, 4개 부분을 수상하며 1993년 아카데미를 석권했으며 흥행에도 성공해 1억 달러 넘게 벌어들였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1992)는 1881년 미국, 와이오밍 주 빅 위스키 마을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다. 1880년대가 되면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서부의 총잡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업종 전환을 모색해야만 했던 시대였다.
웨스턴 전설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바람과 구름을 따라 별빛 찬란한 광활한 대지에서 잠을 청하던 거친 사나이들이 온순하게 집으로 속속 돌아오던 때가 1880년대이다. 영화의 주인공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돼지치기를 하든지 뭐든 가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해야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재미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백여 년이 흐른 후 <용서받지 못한 자>가 개봉된 1990년대가 되면 서부극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스승이나 다를 바 없었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와 돈 시겔, 존 포드에게 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헌정했다.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설적인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 다재다능한 영화인은 캘리포니아 주 카멜시의 시장을 지냈을 뿐 아니라 <체인질링>, <밀리언 달러 베이비>, <미스틱 리버>의 OST를 작곡하기도 했다.
영화 초심자 시절, 자유를 숭배하는 이 근엄한 백인 보수주의자가 정치적으로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주연을 맡거나 연출을 한 수많은 걸작을 보지 않고서는 영화라는 대양을 넘을 수 없음을 알았다. 바로 여기에 클리트 이스트우드의 걸출함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 <황양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에 출연하며 명성을 쌓았다. 감독으로서 오랜 경력을 쌓은 후인 62세 때 만든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가 구축해온 고독한 무법자라는 캐릭터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빼어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처 없이 떠도는 포트그래퍼와 유부녀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다.
용서받지 못한 자 줄거리
극악무도한 사건
빅 위스키에는 마담 스토리베리 앨리스(프랜시스 피셔)가 운영하는 유곽이 있다. 어느 날 술 취한 자들이 유곽의 아가씨 딜나일라의 얼굴에 칼질을 하는 극악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 마을의 보안관 리틀 빌(진 해크먼)은 그자들을 처벌하기는커녕 말 10마리로 배상하라며 그들을 풀어준다. 목돈을 주고 딜나일라를 사왔던 유곽의 주인 스키니 두보아(앤서니 제임스)가 금전적으로 보상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과 보안관 사이에 부패한 거래가 횡횡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다. 웨스턴의 정의는 이미 자본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마담은 복수를 하기 위해 아가씨들로부터 돈을 갹출하여 그 자들의 목에 현상금 일천 달러를 내건다.
잉글리시 밥(리처드 해리스)
극악무도한 자들의 목에 현상금 일천 달러가 걸리자 현상금 사냥꾼들이 빅 위스키로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유명한 총잡이 잉글리시 밥이 나타난다.
그런데 왕년에 악명을 떨쳤다는 잉글리시 밥의 행차가 어째 좀 이상하다. 총으로 말하기보다 끊임없이 입으로만 자신의 무공을 자랑하고 다닌다.
그의 옆에는 싸구려 웨스턴 잡지에 글을 쓰는 삼류 작가 W. W. 보챔프(사울 루비넥)가 따라다니며 그의 말씀을 노트한다. 마치 본업인 드라마에 출연할 일이 없어진 연예인이 광고로 먹고사는 것처럼 잉글리시 밥 또한 그런 신세가 되었다.
보안관 리틀 빌(진 해크먼)
보안관 리틀 빌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 집을 목수처럼 직접 짓고 있다. 리틀 빌 또한 잘 나갔던 서부의 사나이였지만 목수일은 시원찮아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샌다.
그럼에도 그는 빅 위스키 마을에는 누구도 총을 소지하고 들어올 수 없다는 철칙을 세우고는 독재자처럼 마을을 다스리는 보안관 행세를 한다.
리틀 빌이 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잉글리시 밥을 제압하는 장면은 총성 한번 울리지 않았지만 정통 웨스턴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른다.
그러나 밤이 되어 삼류 작가 보챔프 앞에서 철장 안에 갇힌 무력한 잉글리시 밥을 리틀 빌이 희롱하는 장면은 코믹함을 넘어 저물어가고 있었던 웨스턴 시대에 대한 쓸쓸한 조사로 들린다.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오프닝 시퀀스는 땅거미가 지는 광활한 대지에 집 한 채와 고목 아래 황량한 묘비를 지켜보고 서 있는 사나이를 비추며 시작된다. 그가 바로 윌리엄 머니다.
오프닝 자막에 의하면 윌리엄 머니는 세상이 무서워했던 악명 높은 총잡이였고 도적이자 알코올 중독자였다.
장래가 밝은 어여쁜 딸 클라우디아가 그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발작을 일으켰다. 그러나 클라우디아는 윌리엄 머니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윌리엄 머니는 아내가 죽고 나서 착실하게 돼지치기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신참내기 총잡이 스콜필드 키드(제임즈 울베트)가 현상금을 타서 오백씩 나누자며 동업을 제안하러 왔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특유의 건조한 어투로 대답하며 그를 돌려보낸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냐, 키드. 무엇보다 위스키의 힘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지. 10년 동안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어. 내 아내가 나를 치료했어. 술 하고 못된 짓을 치료했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제 무법자가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에 의하여 이제 착하고 선량한 남자로 교화된 것이다. 이스트우드는 이로써 정통 웨스턴이 추구하는 무법자상에 도달한다.
죄를 뉘우치고 더 이상 나쁜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목소리에는 착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소년과도 같은 욕망이 묻어난다.
그러나 두 아이를 양육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돼지를 쫒다가 진창에 얼굴을 처박고는 한 동안 그 자세로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윌리엄 마니는 말 안장에도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땅에 거꾸러지면서도 오랜 친구 네드 로건(모건 프리먼)을 끌어들여 셋은 현상금 사냥에 나선다.
현상금 사냥
억수가 쏟아붓는 밤, 빅 위스키 마을에 들어간 윌리엄 머니와 스콜필드 키드, 네드 로건은 유곽에서 마담을 만나 칼질을 한 극악한 자들의 몽타주를 받고 나오려는 순간에 보안관 리틀 빌 일당이 유곽을 덮친다.
로건과 키드는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윌리엄 머니는 보안관에게 잡혀 모진 채찍질을 당하고 질척한 길가에 버려진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합류한 세 사람이 현상금 사냥에 돌입하여 두 놈 중 한 놈의 카이보이를 윌리엄 머니가 장총으로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솟구친 로건은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집으로 돌아가던 로건은 리틀 빌에게 잡혀 잔악한 매질 끝에 죽고 만다. 로건의 시체는 빅 위스키 마을 거리에 전시되어 모욕을 당한다.
나머지 한놈의 카우보이를 사살한 머니와 키드는 현상금을 받으면서 로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겁먹은 키드는 머니와 로건의 가족에게 현상금을 전달하러 떠나고 윌리엄 머니는 10년 동안 끊었던 위스키를 드디어 들이켠다.
젊은 날의 그 무시무시한 무법자가 귀환하고 있음을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는 어두운 밤하늘이 천둥으로 경고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결말(스포)
부패한 보안관 VS 정의로운 무법자의 대결 구도는 정통 웨스턴이 끊임없이 변주해 온 시나리오 문법이다. 내일 날이 밝으면 머니 일행을 추격하려고 의기양양하게 회식을 하고 있던 보안관 일당 앞에 윌리엄 머니가 장총을 들고 홀로 나타난다.
잉글리시 밥이 말하던 왕의 귀환이라 할 만했다. 잉글리시 밥이 말하길 대통령은 총으로 쏠 수 있어도 왕 앞에 서면 그 위풍당당한 기세에 눌려 총을 쏘는 자가 감히 없다고 했다.
보안관 일당은 패거리가 많았지만 복수의 화신이 홀로 술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가 젊은 날 연기한 무법자처럼 술집 주인을 제일 먼저 지목하여 죽인 후, 리틀 빌과 그 일당 다섯 명을 차례대로 사살하고 나머지는 모두 살려서 술집 밖으로 내쫓는다.
여전히 장대 같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밤, 어둠 속에 마을을 유유히 떠나는 윌리엄 머니에게 총질을 하는 자는 감히 아무도 없었다.
"로건을 잘 묻어줘라. 나를 뒤쫓으려고 하거나 아가씨들에게 다시 손을 대면 돌아와 손을 댄 놈과 마누라, 친구, 지인 모두를 죽이고 집에는 불을 지른다"
에필로그
술집 총격신에서 이스트우드는 어떻게 순식간에 다섯 명을 혼자 해치웠는지를 묻는 삼류 작가 보챔프를 내쫓았다. 리틀 빌에게 있는 공명심이 그에게는 없었다. 고독한 무법자는 그의 무공이 전승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다만 복수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했다고 자족할 뿐이다.
죽어가던 리틀 빌은 윌리엄 머니에게 악담하듯 이렇게 말했다. "이럴수가. 이렇게 죽다니. 집도 지었는데, 지옥에서 보자." 총을 겨누고 있던 이스트우드가 대답한다. "넌 그렇게 죽는거야. 그래, 지옥에서 보자"
그가 현상금에 동했던 첫째 이유는 아가씨가 극악한 자들에 의해 칼질을 당했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본능이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친구 네드가 죽었을 때도 복수의 일념으로 그 위험한 술집에 혼자 들어갔다. 이 얼마나 멋지고 아우라 넘치는 사나이의 결단인지를 보라!
그러나 그가 사랑했던 아내 클라우디아는 현상금 사냥을 떠나는 순간의 그를, 위스키를 다시 입에 대는 순간의 그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술집 총격전에서 함부로 죽인 다섯 명도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그가 현상금을 노리고 복수에 눈이 멀어 목숨을 거는 도박을 했을 때 아이들 또한 그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이미 노인네가 아닌가? 그럼에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윌리엄 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대표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93)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주요 연출 초기 작품으로는 색소폰 연주자 칼리 파커를 그린 <버드>(1988)와 <퍼펙트 월드>(1993), <미스틱 리버>(2003)이 있다.
그리고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 조연상을 휩쓴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체인질링>(2008), <그랜 토리노>(2008), <아메리칸 스나이퍼>(2011), <설리>(2016) 등이 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US 에어웨이즈의 불시착 사고를 그린 실화 영화 <설리>는 뉴욕의 어느 극장에서, 연이어 운 좋게도 한국의 극장에서 보며 감동을 두 번 먹은 인연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스틱 리버>를 이스트우드의 최고 걸작으로 꼽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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