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비 레터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줄거리와 결말, 복 많은 김초희! 강말금! 윤여정!

by 다독다감 2021. 5. 6.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어린이들이 결코 아닌 갓사친 4 멤버스는 오랜만에 다같이 넷플릭스에 올라온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를 감상했습니다.

 

김초희 감독과 주연배우 강말금 두 사람 모두 이 영화로 장편 영화에 데뷔했으니, 두 사람을 품은 복이 많은 영화라고 할까요? 

 

김초희 감독과 배우 강말금

파리1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김초희 감독은 홍상수 사단에서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단편 영화 <겨울의 피아니스트>, <산나물 처녀>등으로 주목받은 신인 감독입니다.

 

'찬실' 역을 맡은 배우 강말금은 1979년 부산 토박이 출신으로 부산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극단 수레무대에서 연극으로 14년간 내공을 쌓은 연기파 배우입니다.

 

말금이라는 이름은 국문과 재학 때 시를 가장 잘 짓는 친구의 필명을 연극을 시작하면서 500원을 주고 산 예명이라고 해요. 받침이 다 들어간, 꽉 찬 느낌의 예명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또 '강맑음'으로도 들리니까요.
정작 강말금은 촌스런 이름이 뜰 것같아 샀다고 하지만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전체 분위기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감상한 전체적인 느낌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는 한편의 순정한 시집을 읽은 듯한 느낌!

 

등장인물들의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일상어처럼 귓등을 간지럽히며 맴도는 영화입니다. 아~, 인생이란!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만드는 명화랄까요?

 

11월 재개봉 당시 공식 포스터

강말금의 순도 높은 대사들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끌어가고 개성 넘치는 조연들이 탄탄한 연기로 뒤를 든든하게 받쳐줍니다.

 

찬실이 세든 주인집 할머니 역으로 나온 대배우(이제 '대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겠지요) 윤여정의 고단한 삶의 지혜가 체화된 예의 그 명품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줄거리

찬실과 할머니

찬실(강말금)은 지감독을 너무나 존경하여 그의 영화들만 프로듀서한 커리어만 쌓아갑니다. 지감독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믿고 따랐던 지감독이 회식 자리에서 과음으로 갑자기 죽자 찬실은 망연자실합니다.

 

일거리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진 찬실은 달동네로 이사를 갑니다. 이 영화의 찰영지는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달동네라 불리는 홍제동 개미마을인데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을 지닌 마을입니다. 언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마을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할머니 역에 착 달라붙는 호연을 보인 배우 윤여정과 강말금 스틸컷

 

딸을 먼저 보낸 주인집 할머니(윤여정)는 뭐랄까요? <미나리>에서의 '순자'보다도 생을 더 달관한 할머니 분위기가 납니다. 찬실은 할머니와 친해지면서 말동무가 되어 콩나물도 같이 다듬고 한글을 가르쳐 주며 소일합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한다고 난감해 하자 찬실이는 시는 원래 아무거나 쓰는 거라며 먼저 써보시라고 권합니다.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받침도 빼먹은 할머니가 쓴 시를 보고 찬실은 그만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맙니다.

 

할머니가 쓴 단 한줄의 시는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함께 보던 네 명 모두 훌쩍거리며 아, 할머니, 어째... 찬실이도... 콩나물 하나라도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어. 대신, 애써서 해"라는 마음으로 다듬는 할머니가 쓴 시는 이래요.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찬실과 장국영

그러던 어느날 찬실의 눈앞에 귀신 장국영(김영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팬츠와 러닝만 입은 유령이랄까요? '시집은 못가도 영화는 계속 찍고 살 줄 알았던' 찬실이었기에 속옷 차림의 남자 환영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국영은 외롭고 힘든 찬실에게 디딤돌이 될 좋은 명대사들을 '장국영'처럼 콕콕 찍어 날려 줍니다.

 

동생 같은 여배우 소피(윤승아)가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찬실은 굳이 일해서 돈을 벌겠다며 소피의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합니다.

 

찬실은 단편 영화감독이었지만 지금은 소피의 불어 가정교사 알바를 하는 김영(배유람)을 만나게 되고 애뜻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외로웠던 찬실이에게 남자로 나타난 김영

 

찬실이 하루는 김영더러 참 좋은 사람 같다며 갑자기 백허그를 하자, 김영은 차분하게 돌아서며 좋은 누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현타가 찾아온 찬실이 울먹거리며 집에 돌아온 날도 장국영은 찬실을 아이처럼 위로해주며 토닥여줍니다.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모든 것을 다 차지하려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좋은 사이로도 지낼 수 있을 거예요"

 

장국영은 찬실이에게 끝내 내려놓지 못했던 '영화적 자아'가 아니었을까? 장국영은 "제가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할께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떠나간다.

 

외로움에 지쳐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사랑 감정이 아니라는 말. 장국영은 찬실이 하루를 견뎌내기 힘들 때마다,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할 때마다 달을 가리켜 줍니다.

 

찬실이 앞으로도 영화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자 장국영은 이런 명대사를 날려요.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게 진짜 문제예요"

 

아마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장국영의 존재는 "오후 3시"라는 명대사와 함께 감독이 장국영에게 바치는 오마주가 아닐까 해요.

 

극 중 찬실이가 영화를 처음 좋아했던 시절 동경했던 홍콩 배우가 장국영이었고, 장국영 역을 맡은 배우 김영민은 <아비정전>(1990)의 '아비'를 닮은 분장을 하고 연기했으니까요.

 

이 외에도 이 영화 곳곳에는 김초희 감독의 영화 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 오마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집시의 시간> 비디오 테이프가 나오고, 세계 최초의 영화라는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895)를 패러디한 엔딩신이 그런 장면들 중의 하나예요.

 

'아비'역의 창국영을 패러디한 배우 김영민 스틸컷

 

찬실이가 기분이 우울하고 낙담 상태일 때는 귀신 장국영이 꼭 팬츠 차림으로 나오고, 찬실이가 기분이 업되어 있을 때는 정상적인 옷차림으로 나오는데요.

 

이것에 대하여는 감독이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정신분석은 오지랖일 수도 있기 때문에 생략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결말(스포일러)

아무튼 찬실이는 할머니와의 우정, 김영과의 따뜻한 연대의식, 소피를 비롯한 옛 동료들의 응원 속에 "왜 그리 일만 하고 살았을꼬"라는 탄식을 딛고 일상과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저는 늘 목말랐던 거 같아요. 사랑은 몰라서 못했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 저를 꽉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잘못 생각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가 않더라고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비로소 찬실이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고 마침내 찬실이 만든 영화가 <기차의 도착>처럼 극장에서 상영되는 걸 장국영이 바라보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찬실이가 달을 보며 기도한 마지막 명대사는 이래요.

 

"우리가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에필로그

주인공 찬실이의 한자는 빛날 찬(燦), 열매 실(實). 마흔 되도록 결실이 없었던 주인공이 뭔가 맺어봤으면 하는 소망으로 감독이 지은 이름이라고 해요.

 

김초희 감독은 23살 때부터 감독 꿈을 꿨다고 해요. 올해 46살이니 23년만에 꿈을 이룬 셈이에요. 2007년부터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작 전원사>에서 프로듀서로 7년여를 일하며 홍 감독의 영화 10편을 프로듀서 했는데요. 

 

2016년 홍 감독과 김민희 배우의 그 일이 터졌을 때 갑자기 실직했다고 해요. 프로듀서 일도 끊기면서 그 암담하고 절망적인 경험이 '찬실'이의 입을 통해 발화되는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인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순제작비가 3억 원이 채 안 되고 18회차 만에 촬영을 끝낸 독립영화로는 믿기 어려울만큼 그 어떤 초호화 블록버스터보다 더 감동적인 영화랍니다.

 

김초희 감독을 아끼는 배우 윤여정은 단편 <산나물 처녀>에서는 외계인 역으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부산 출신에다 40대 늦깎이 등 김초희 감독과 공통점이 많은 배우 강말금은 왠지 김초희 감독의 페르소나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과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수상하였고 파리한국영화제 등 각국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고 해요.
올해 1월에는 <찬실 씨에게는 복이 많네>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도 개봉되었다고 해요.

 

"우리가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이라는 마지막 대사의 여운이 남는 엔딩샷을 보며 아브라빌 갓사친 4 멤버스도 이 영화를 본 것만으로도 복이 많다고 느낀 하루였어요~.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