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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교실

더이상 독이 든 기사는 NO!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 2'

by 다독다감 2021. 4. 25.

SNS 시대에도 언론사 영향력은 여전,
언론 기사의 이면을 꿰뚫는 안목을 키워 줄 책 "신문 읽기의 혁명 2" 소개글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 2>(개마고원, 2009)는 정파적 신문 읽기를 벗어나 독자가 자신의 실제 삶이기도 한 경제생활과 정치를 연관 지어 신문을 읽어 나가기를 제안하는 책입니다.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온전히 보이기 때문이고, 경제와 정치를 함께 읽어야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정치 경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는 것인데요.

 

<신문 읽기의 혁명 2> 주요 내용

저자 손석춘 프로필

저자 손석춘은 1984년부터 한국경제신문, 동아일보 기자를 했으며 1988년 '전국 언론노조연맹'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1991년부터 한겨레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2011년부터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된 저자는 지난 3월, 조선과 동아일보 100년사를 집대성한 <조선 평전>과 <동아 평전>를 각각 출간했습니다. 

 

손석춘이 말하는 경제란

그러면 저자 손석춘이 말하는 경제란 무엇일까요? 저자가 말하는 경제란 복잡한 경제이론이 아닌, 신문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광고를 일컫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상적으로 신문 기사는 펙트에 기초하여 진실과 공정함을 알리는 공론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한국의 독과점 언론들(저자는 조중동을 '독과점 언론'이라고 지칭한다)은 광고주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취사선택하고 왜곡까지 일삼는다는 것인데요. 신문업 자체를 자본주의하의 기업으로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목하,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블로그마저 광고에 심하게 휘둘리면서 무의미한 컨텐츠가 양산되는 세태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블로그가 도입된 초창기 시절, 심미적이고 인문학적인 성찰이 번뜩이는 글들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블로거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슬픈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교훈

손석춘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꺼내 <신문 읽기의 혁명 2>의 말머리를 시작하면서 참여정부 시절 경제 정책의 굴절을 통하여 한국 독점 언론들의 폐해를 톺아봅니다.

 

2002년 4월 경기 지역 후보 경선 연설에서 당시 노무현은 "복지정책을 통해 소득분배를 하고, 이 소득분배를 통해 건강한 소비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2002년 10월 1일)에서는 "소득 재분배 정책을 강력히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첫 국정연설(2003년 4월 2일)에서는 "분배 문제"를 "집값 안정과 사교육비 부담 경감"으로 대폭 축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5년 동안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사교육비도 급팽창했습니다.

 

참여정부 집권 5년 동안 부익부 빈익빈은 커져갔고, 고졸과 대졸 사이의 학력 간 임금 격차도 더 커졌습니다. 어째 오늘의 현실을 보는 거 같아 소름 돋지 않나요?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기에 <신문 읽기의 혁명 2>는 여전히 유효한 저작물인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전환'은 집권 다섯 달 만인 2003년 7월에 확연하게 드러났는데요. 그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중장기 국가비전으로 공식 설정했던 것이죠.

 

대선 후보 경선 때 '분배 중심'에서 후보 결정 뒤 '성장과 분배 동시 추구'로 옮겨간 경제정책이 대통령 당선 뒤에는 '성장 중심'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주창하던 시점에, 수도권의 30대 주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어린 세 자녀와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참극이 벌어져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애초 삼성그룹 이건희가 제기한 이데올로기였고, 언론의 여론몰이에 힘입어 마침내 분배를 강조하며 출범했던 '참여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는 과정은 우리가 신문 읽기에서 깊이 성찰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신문 깊이 읽기 방법

세계화와 민중, 그리고 이해관계

저자 손석춘이 신문 깊이 읽기의 세 가지 지층으로 강조하는 것은 세계화와 민중, 그리고 이해관계입니다. 세계화란 글로벌 스탠더드의 다른 표현이고 독점 언론이 사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바로 신자유주의와 같은 이름입니다.

 

그 당시(지금도 여전히) 누구나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를 대폭 줄여야 하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국내 시장을 모두 개방해야 하며,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작은 정부를 구현해야 하며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기사와 사설들을 지겹도록 접해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대신에 독과점 언론들이 주로 사용하는 의제들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2008년 9월 '종주국'인 미국의 금융위기로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면서 신자유주는 이제 시기가 지난 담론으로 폐기되어 가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금융위기에 아랑곳없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가 좋아하는 '불도저'마냥 강행되었습니다.

 

거대 언론과 학계의 이해관계

독과점 기사들에는 신자유주의의 내용, 곧 기업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법인세 감세, 복지 축소, 작은 정부론을 적극 찬양하는 대학교수들의 글이 넘쳐났습니다. 이는 거대 언론과 학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인데요.

 

종부세 '일부 위헌'만 하더라도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이 종부세 과세 대상자로, 그 가운데 7명이 위헌 결정에 손을 들었다는 사실은, 상위 1%의 '계급의식'이 판결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문 읽기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사실은 소위 조중동 세 신문사의 고위 편집 간부들 대다수가 서울 강남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전두환 정권 시절 서울 지역의 언론인들 가운데 다수가 서울 강남에 '기자 아파트'를 특혜로 분양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무릇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해관계와 무관한 정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는 그 이해관계를 최대한 이성적으로 조율해가는 사회일뿐입니다.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과거 종부세를 둘러싼 언론과 정치권의 모습은 국민 1%만의 이익을 꾀하는 정책이 어떻게 국민 모두를 위한 정책으로 여론화되고 나아가 어렵게 제정한 법률마저 무력화시키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신문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 간악하게 국익으로 포장하고 있는가를 탐색할 때 비로소 신문을 깊이 읽는 눈을 갖출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일방적으로 추구되는 현실에서 자신이 민중임을 자각하는 매개가 바로 이해관계의 정확한 인식이라는 거죠.

 

역사의 무서움

이 책은 신문 읽기의 방법론 외에 역사의 무서움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역사는 언제나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됩니다. 다음 기사를 한 번 찬찬히 읽어 보시겠습니다.

조선일보는 1980년 5월 25일 자 사회면 "무정부 상태 광주 1주/ 바리케이드 너머 텅 빈 거리엔 불안감만…"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에서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이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고 보도했다.

민주시민을 '난동자'로 쓴 이 기사의 작성자는 그 뒤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거쳐 2009년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대중'이다. (pp. 100-101)

 

참고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자까지 똑같은 조선일보 김대중은 1939년생인데요. 1989년부터 13년간 조선일보 편집국장, 주필직을 역임했고, 2004년 부사장 대우로 정년 퇴임하고, 2020년 3월에는 조선일보 고문직에서도 물러났으나 김대중 칼럼은 지금도 계속 연재되고 있습니다.

 

5공 신군부에 영합하는 기사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던 그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선후보 관훈토론회 패널로 참여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맞짱을 뜨면서 1988년 논설주간으로 승진하고 이후 쭉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됩니다.

 

조선일보에서 편집 전권을 행사하던 김대중의 막강한 영향력은 2005년 손석희 앵커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었고, 2010년경부터는 종이신문도 예전의 그 명성이 무색하리만치 쪼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SNS 시대인 현재에도 이른바 조중동의 영향력은 어젠다 설정이나 여론 몰이에서 교활한 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독이 든 기사는 NO!

역사는 되풀이되므로 넘쳐나는 인터넷 기사라는 사과에 독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를 잘 톺아보아야 합니다. 독이 든 사과를 건네는 '마녀'는 일반 독자들이 기사 표면에서는 찾기 어려울 만큼 깊숙이 똬리 틀고 행간에 숨어있어 눈치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특권이나 기득권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때로는 '거친 색깔 공세'로, 때로는 '먹음직스러운 사과'로 민심을 교묘하게 호도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수많은 유튜버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독이 든 사과를 품은 유튜버를 감별해내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신문 읽기의 혁명 2 책표지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 2>은 SNS 시대에서도 독이 든 언론 기사들을 감별하는데 참고가 될만한 좋은 책입니다. 종이신문에서 인터넷 신문으로, 인터넷 신문에서 유튜브로 플랫폼의 외관이 바뀌어도 그 본질은 언제나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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