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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교실

평일도 인생이니까, 평일이 바쁘신 분들을 위한 김신지 에세이집

by 다독다감 2021. 4. 14.

같이 사는 친구 H의 강추로 김신지의 에세이집 <평일도 인생이니까>(2020)를 읽고 햐, 이 분, 어떻게 공감 가는 글을 이렇게 물 흐르듯 잘 쓸 수가 있지 하며 감탄했습니다. 나이 서른일곱이라고 했는데, 이미 인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출퇴근하며 입버릇처럼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고 대개 말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는 주말의 단 이틀을 위해 평일 5일을 고생하며 희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거라면 평일은 우리 인생에서 지워지는 날들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너무 억울하단 생각이 들지 않나요?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이 책의 부제는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입니다. 그러니까 김신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는 평일도 주말만큼이나 소중한 날들이 되기 위한 작가만의 노하우와 같은 생각들은 묶은 에세이집입니다.

 

작가 김신지는 "오키나와 노인들의 장수 비결은 80퍼세트만 먹고 80퍼센트만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라고 첫문장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이 첫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이 말을 들은 적 있지만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고 작가처럼 깊게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작가 김신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다디던 스무살 작가는 창작 수업에 들어가 드라마 작가로 일하시던 교수님으로부터 "네 재능은 70점짜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그때부터 어쩌면 인생은 재능 있는 친구 뒤에서 박수를 치는 게 보통인 걸 깨달았다고 할까요?

 

졸업하고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던 작가에게 엄마는 "니 그냥 방송국 다닌다 카믄 안 되나? 마이 다르나?"라는 말을 듣고 부모가 보았을 때 '별다른 것이 되지 못한' 삶을 사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평일도 인생이니까>는 그런 이야기들이 백사장 모래알처럼 빼곡히 박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에세이집이에요. 

 

웃기고도 콧날이 시큰해지는 이야기들

작가가 어찌나 글을 감칠맛 나게 잘 쓰든지, 동해로 2박 3일간 다녀온 가족 여행기에서는 "니들 어렸을 때 이걸 못 먹인 게 나는 여태 한이다."라는 어머니 말에 콧등이 시큰거리고 친구와 멘토님에게 사주를 보러 간 '작은 비구름의 행복' 이야기에서는 너무 웃겨서 한참을 혼자 키득키득거렸어요. 

 

"소의 날에 태어났구먼, 소처럼 일할 거라는 뜻이지... 작은 비구름 사주야... 비구름은 비구름인데 너무 작아, 한자리에 있질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비를 뿌리는데 별 영향력은 없어... 왜냐허믄, 작거든."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찾아간 작가에게 멘토님이 그렇게 말하니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그것도 뭐, 큰 비구름도 아니고 너무 작은 비구름이라니, 뭐라도 항변하고 싶었던 작가의 말에 같이 간 친구는 웃음을 참고, 책을 읽는 나는, 보는 사람이 없는지라 혼자 한참을 마음대로 키득거렸지요. 그래,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들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어갈수록 작가가 저랑 성향이 많이 비슷하단 걸 느꼈다고 말한다면, 어이~ 책 한 권 읽고 그렇게 판단하면 오버인데 말해도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는 다는 건 그만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일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맥주를 좋아하는 건 차지하고서라도, 김혼비의 <아무튼, 술>이나 마스다 미리의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습니다."라는 걸 인용하는 것만 봐도, "내가 머물렀던 곳의 풍경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라고 주장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요즘 내게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많은 책을 읽기보다 이미 읽은 책을 한 번 더 읽는 시간, 여러 곳에 가는 것보다 한 장소에 제대로 머무르는 일."이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요즘 제가 그렇거든요. 책도 예전에 읽은 책들을 다시 읽어 리뷰를 올리고, 감명 깊게 본 영화도 다시 보며 리뷰를 올리고 있거든요. 

 

인생을 살다 보니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 삶을 채우기보다 이미 경험한 것을 다시 천천히 꼭꼭 씹어 소화시키는 즐거움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평일도 인생이니까

그리고 "바쁜 하루를 보내면 일과 나는 자꾸 가까워지는데 나는 나와 자꾸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라는 문장에서 아, 이런 기분 나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작가님은 "바빠서 나빠지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이미 깨달았구나하는 공감.

 

서른일곱이 된 작가는 인생은 '잘 살지 않고 그냥 살아도 되는 거였는데, 무엇보다 제대로 사는 인생이라니, 그런 건 없는데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래요. 잘 살고 못 살게 되는 건, 각자의 능력밖에 있는 운이 작용하는 영역인 것 같아요. 그러니 작가의 말처럼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기 보다 우린 그냥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키나와 노인들은 아마도 뭘 잘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단지 하는 거를 즐거워하며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뭐든 잘하려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해요. 

 

잘하려는 마음을 조금만 줄이자

'기록'에 관한 일련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래! 매일을 블로그에 기록하도록 하자! 굳게 결심을 하고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보시다시피 블로그 시작 83일째인데 글은 50개밖에 올리지 못했으니, 지금까지 절반 밖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꼴이 되었네요.

 

이게 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고 좋은 글을 쓰려는 욕심이 나를 앞질렀기 때문이라는 걸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냥 올리면 되는 거였는데, 고치고 또 고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그 욕심이 문제였다는 걸. 그러니 블로그도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80퍼센트만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올리자고 노선(?)을 살짝 변경했어요. 오타도 더 이상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매의 눈을 가진 방문자님들은 눈감아) 그러면 일상이 더 편해지고 행복해질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은 부작용이랄까요.^^

 

진짜 어른이란?

또 잘하려는 마음은 자꾸만 남을 부러워하게 만들고, 비례하여 점점 왜소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진짜 어른을 이렇게 생각해요.

 

남을 부러워할 시간에 차근차근 내가 되어 가는 게 낫다. 진짜 어른은 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내 이야기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아, 이 문장을 보고 밑줄을 딱 끄었습니다. 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내 이야기!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그 마음이 제게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만 너무 많은 귀를 기울였던 것 아니었던가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작가란?

그리고 꼭지 '잘 외로워지는 연습'에서 "좋아하는 사람하고 보내는 시간만 귀하게 써야 하는 게 아니라, 나하고 있는 시간도 귀하게 써야 한다는 걸 배웠다"라는 문장도 좋았어요. 나하고 있는 시간을 내가 그 동안 귀하게 써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요. 예컨대, 혼밥도 대충대충 때우는 것이 아니라 더 맛있게 먹기로 했어요.

 

마지막으로 스물다섯에 함께 살았던 김신지의 룸메이트가 붙여주었다는 쪽지를 인용하며 끝을 맺을까 해요. 제 가슴에도 와닿은 명언인 것 같아요.  

 

"작가란 오늘 아침 글을 쓴 사람이다."

 

책을 읽고 메모지를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김신지 에세이집

 

<평일도 인생이니까>의 문장들

아쉬운 마음에 작가의 말처럼 지금 나의 삶이 이들 문장 위에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 인용해 보았습니다. 김신지의 에세이집에는 공감 가는 문장들이 깨알같이 많이 들어 있어서 직접 책을 읽어보는 수고로움도 좋을 것 같아요.~^^

 

"애초에 무를 썰려고 칼을 뽑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왜 자꾸 무'라도' 썰라고 하는 건지"(그놈의 픽 피처, 나란 놈은 스몰 픽처 중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하다'와 '되다'를 혼동하는 데서 온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쫒고 있는 목표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 빨리 그만두겠다, 고 수시로 다짐한다"(이경미, <잘 돼가? 무엇이든> 중에서)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아홉 시가 된다. 매일 겪어도 매일 억울하다. 아니, 뭐했다고 아홉 시야..."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으로 자라, 내 행복을 내가 책임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른으로 사는 기쁨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고 어디 먼 데를 바라보는 대신 내 발밑을, 나를 둘러싼 반경 5미터 안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이고 싶다."

 

"평범한 인생을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며 내일보다 좋은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그냥 좋아지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관심을 가져야 좋아진다. 그게 방이든, 일상이든, 삶이든."

 

"인생은 같은 트랙을 달려 결승점 리본을 누가 먼저 끓고 들어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결국 모두,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나이에도 늦을 수 없다. 삶의 어떤 시간에도 실은 늦게 도착한 적 없다."

 

좋은 글 주신 김신지 작가님에게 감사를 드리며(김신지 작가님도 눈감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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