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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울, 철학과 문학이 교차하는 미셸 투르니에 산문집

by 다독다감 2021. 6. 9.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의 <생각의 거울>은 철학과 문학이 교차하는 즐거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간명한 산문집입니다.

 

철학 지망생이었던 미셀 투르니에의 글에는 신화적 상상력이 샘물처럼 솟으며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생각의 거울 구성

일상의 풍경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기를 즐긴 미셸 투르니에는 <생각의 거울>에서 그 전범을 잘 보여줍니다. 서로 상대되는 개념 57개를 짝패로 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우리 앞에 도드라지게 선보입니다.

 

'남자와 여자'에서 시작한 <생각의 거울>은 돈 주앙과 카사노바, 내혼과 외혼, 고양이와 개, 포크와 스푼, 두려움과 고뇌, 말과 글, 순수와 순결 등을 지나면서 점점 고도를 높여 시간과 공간, 영혼과 육체, 신과 악마, 존재와 무의 세계에까지 다다릅니다.

 

남자와 여자

<생각의 거울>에서 '남자와 여자'의 기원을 제일 먼저 꺼낸 미셸 투르니에는 남성의 프롤레타리아였던 여성들이 시대가 지나면서 육체적인 힘과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에세이를 시작합니다.

 

모성의 부담이 점점 가벼워지면서 어쩌면 순수한 모계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르고, 그런 사회가 되면 남자들은 여자들의 쾌락에나 이용되는 장난감 신세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나무와 길

'나무와 길'이라는 꼭지에서는 나무는 한 군데 붙박여 있는 안정성의 상징이고 길은 순환의 도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보는 풍경은 한 군데 머물러 있는 덩어리들과, 소통의 역할을 하는 길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안정감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도시들은 순환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나무들이나 분수대, 시장, 강둑 등을 빼앗기고, 점점 더 거주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로 변해간다고 말합니다.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 풀이 나 있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즐거워지는 이유도 물이 스며들며 땅속 깊은 곳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랍니다. 현대에는 아시다시피 그런 길이 거의 없습니다.

 

생각의 거울 2판 4쇄본

만약 당신이 샤워를 좋아한다면 수직적이고 깨끗함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좌파 쪽에, 목욕을 좋아한다면 수평적이고 퇴행 상태를 좋아하는 까닭에 우파 쪽이라는 미셸 투르니에는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주 사소한 사유를 맛볼 수 있는 '샤워와 목욕'과 같은 꼭지들도 <생각의 거울>에 제법 있습니다. 

 

재능과 천재성

'재능과 천재성' 항목에서 미셸 투르니에는 인간은 누구나 천재성, 재능, 솜씨, 잔재주, 이 네가지 능력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어떤 능력이 얼만큼의 비율로 섞여 있는가가 문제라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한 순간 인기를 모으긴 해도 곧 망각 속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립니다. 

 

반면 천재적인 인간은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대 조류와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젓기에 그의 작품은 대체로 현재에는 배척당하나 미래는 그의 것이 된다고 합니다. 너무나 지독하게 배척당한 나머지,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설명입니다.

 

책의 역사

맨 처음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이라는 타이틀로 1판이 출간되었다가 2판에서야 옮긴이 김정란의 노력으로 원제인 <생각의 거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고 있는 책은 2006년 6월 20일 2판 4쇄본입니다. 당시 프랑스 문학에 꽂혀있던 친구와 함께 보던 책입니다. 울퉁불퉁한 내 마음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드는 걸 느끼고 싶을 때 한 꼭지씩 읽곤 합니다.

 

미셸 투르니에

1924년 프랑스 파리에 태어난 미셸 투르니에는 소르본 대학교와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철학 전공 교수 자격시험에 낙방했습니다. 철학 교수가 꿈이었던 미셸 투르니에가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같다고 옮긴이는 후기에서 밝혔습니다.

 

그 후 독일 문학 작품들을 번역하고 1954년부터 5년 동안 유럽 제1방송에서 문화 프로그램 PD로 일한 후 10년 동안 플롱 출판사 문학 편집부장을 역임했습니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재해석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미셸 투르니에는 <양철북>과 함께 20세기 최대의 전쟁 문학이라고 평가받는 <마왕>(1970)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공쿠르상을 심사하는 아카데미 공쿠르 종신회원으로 1972년 추대되었습니다. 

 

파리 근교의 생 레미 슈부르즈 근처에 있는 슈아젤이라는 작은 마을의 옛 사제관에서 1962년부터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미셸 투르니에는 2016년 91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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