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페스티발>(2010)을 지금에 와서 보면 상당히 진보적이고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10년여 전, 페미니즘이 척박한 풍토에서 페티시즘과 성적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페스티벌>은 관객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남의 이야기로 시큰둥하게 들을까봐 영화 시작부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라는 자막을 깔아주는 친절함을 보여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영화 <페스티발>은 보통의 평균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낯선 성적 코드를 코믹하게 보여줍니다.
그 당시 충무로에서 에스엠과 같은 민망한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감독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모험이었을 것입니다. 흥행은 실패했지만 이해영 감독은 운 좋게도(?) 특별한 성적 취향들을 밝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폐스티벌의 등장인물들
영화 <페스티발>의 첫 번째 커플는 경찰 장배(신하균)입니다. 장배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장배는 크기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크기 숭배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장배는 뉴요커 앞에서도 기죽지 않을 사이즈를 가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친 지수(엄지원)가 당연히 자기의 크기에 만족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장배는 우리 사회의 평균 남성인의 전형적인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수는 장배의 그것에는 절대 만족하지 못합니다 지수가 원하는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바이브와 같은 세밀한 디테일이 빚어내는 공작을 원합니다. 기구로 환희를 느끼는 지수의 모습을 보고 장배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두 번째 커플은 여고생 자혜(백진희)와 오뎅장수 상두(류승범)입니다. 아마도 백진희가 아저씨를 유혹하는 당돌함에 관객들이 제일 많이 놀랐을 것 같습니다.
가짜 돌에만 집착하는 상두의 사랑도 신이하게 비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이 두 번째 커플은 그리 밉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배우 류승범의 리즈시절이 만들어낸 연기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상영 중이던 <부당거래>에서의 류승범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미지의 순둥이 역을 맡아 그런 걸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을 수 있다는 걸 조근조근 연기했습니다.
세 번째 커플은 한복점을 하는 정숙한 과부 순심(심혜진)과 우직한 철물점 기봉(성동일)입니다. 다짜고짜 에스엠 놀이를 하는 커플을 관객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요?
킬힐을 신고 채찍을 휘두르는 천연덕스런 심혜진과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 기꺼이 가면을 쓰고 기어 다니는 능청스런 성동일의 연기가 묘하게 앙상블을 이루며 세상에 저런 커플도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커플은 순진한 국어선생 광록(오달수)인데요. 광록도 어느날, 다소 뜬금없지만 란제리 애호가의 모습을 갑자기 보여줍니다.
특별한 취향을 대하는 자세
페스티벌은 백화점식으로 페티시즘의 만상을 보여주느라 바쁜 나머지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은 찾아볼 수 었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니 부디 이해해라는 투랄까요?
이들의 성적 취향을 이해하든지 말든지는 관객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니가 나를 알아”라는 순심의 대사는 이런 정서를 잘 반영합니다. 순심은 딸인 자혜에게 “세상엔 변태 엄마도 있는 거야”라고 말할 뿐입니다.
<페스티발>에는 관능적인 정사신도, 파격적인 노출신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세상과 섞일 수 없는 특별한 성적 취향을 보여주면서 우리 안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본능을 슬쩍 툭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영화는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어개인”, 1999년 빅 히트한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경쾌하게 들려주는 것으로 그 목소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니 실화의 주인공은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페스티발>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특별한 취향을 알게 되고, 그 순간 그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즐깁니다.
비약이 심했지만, 영화 <페스티발>은 우리가 성적 취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에 대해 가벼운 질문을 던집니다. 요즈음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나 '365일'이 넷플릭스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만약 페스티벌을 요즘 개봉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이해영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로 장편영화에 데뷔하였습니다.
영화 <페스티발>이 그리고 있는 페티시즘은 fetish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종교적으로 숭배의 대상을 물신에서 찾는 것에 기원이 있고, 정신분석학적으로는 거세에 대한 방어기제로 성적인 대상을 물건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의 성적 목적을 물건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도착의 일종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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