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인의 베스트셀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0)을 읽어보려다가 그 두께에 질려 몇년째 아예 펴보질 못하다가 대신 장 자크 아노가 연출을 하고 제임스 본드의 남자, 숀 코너리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장미의 이름>(1986)을 봤습니다. 영화의 러닝 러닝 타임도 130분으로 꽤 긴 편입니다.
원작 소설의 주제는 신학이라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영화는 1327년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재로 지식을 독점하려는 자와 지식을 탐구하려는 자의 사투에 방점을 찍어 나름 스릴러 영화로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 장미의 이름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며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가 52세 때 발표한 첫 장편 소설 <장미의 이름>입니다. 이 소설은 두께가 워낙 두툼하다보니 사람들이 다 읽어보지도 않고 교양인척 인용하는 소설 중에서 대표격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아무튼, 움베르토 에코는 여자 친구의 청을 받아들여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요. 그 여자 친구가 역사에 남을 작품을 내는데 공헌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데도 일조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미의 이름>의 영화화는 배우 숀 코네리가장 자크 아노 감독에게 제안했는데요. 장 자크 아노 감독은 2년 동안이나 거절하다 그를 직접 만나보고는 그의 매력에 반해 제작자와 움베르토 에코를 설득해 크랭크인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숀 코네리의 “이보게, 젊은이”라는 한마디에 감독은 수사 윌리엄 역에 숀을 낙점했다고 해요. 숀 코네리는 여러모로 매력적이고 다재다능한 배우였던 것 같습니다. 생전에 알려진 대표적인 일화가 축구 실력이 뛰어나 하마터면 맨체스터 유나이트의 입단을 할 뻔한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이 탄생되었고, 노년으로 접어든 매력적인 배우가 있었기에 한 편의 명작 영화도 탄생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데에도 여러 좋은 인연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영화 장미의 이름 줄거리
장 자크 아노 감독는 원작의 철학적인 부분들을 상당 부분 걷어내고, 음모, 타락, 폭력, 독선의 악취를 풍기는 수도원의 이야기를 <장미의 이름>에서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영화 <장미의 이름>의 줄거리는 의문의 죽음이 연속되는 식으로 전개돼요. 제일 먼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채식 수사 아델모의 시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프란시스코 수사인 윌리엄(숀 코네리 분)이 파견되어 그의 수련 제자 아조(크리스찬 슬레이터 분)가 명탐정 셜록 홈스처럼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윌리엄과 아조가 사건을 수사할수록 수도사들의 의문의 죽음이 계속 일어나고, 그 와중에 아조가 빈민가 마을 소녀와 수도원에서 뜻하지 않게 정사를 나누게 되는일까지 벌어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수사가 그래도 되나라는 의문점은 차치하고, 당시 15세의 어린 배우가 원시적 욕망으로 충만한 정사신을 연기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윌림엄은 암호가 적인 양피지를 발견하고 죽은 자들의 혀와 손가락 끝에 검은 잉크 자국으로 미루어 의문의 죽음을 풀 실마리가 장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일한 필사본 <시학> 제2권과 관련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장서고에 묻힌 비밀을 추리해 내지만 장서고에서 엄청난 화재가 발생합니다. 범인을 알아챈 윌리엄이 장서고로 뛰어들지만 몇 권의 서책만을 품에 앉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합니다.
지식 독점자와 지식 탐구자의 대결
오래 전에 제작된 <장미의 이름>은 현재 시점의 관객들에게는 미스터리나 서스펜스의 강도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밀하게 검즈오딘 중세 암흑기의 생활상과 정통과 이단에 대한 중세적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지닌 가치입니다.
특히 기독교의 자부심이라고 했던 베네딕트 수도원의 장서관이 불타버리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장서관을 관장하는 늙은 수도사 호르헤의 외침이 공허함 울림으로 아직까지 메아리치는 것 같습니다.
“지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이다”
중세 도서관들은 호르헤의 외침처럼 서책들의 열람보다는 보존에 집착했고, 지식의 통제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려 했던 것이지요.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면 중세 시대의 책과 지식을 사랑했던 사서들의 삶과 필사의 정신도 강하게 다가옵니다. 책과 지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지나쳐 인터넷 시대인 현재에도 정보를 통제하고 독점하려는 호르헤 같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지는 않고 몇년째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는 심리도 이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지식은 그냥 보존하고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고 토론하는데 있는데 말입니다. 이 영화를 봤으니 내친 김에 소설도 읽어야겠습니다. 이 영화를 본 소득이라면 소득이겠습니다. ㅋ
여담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숀 코네리는 수도사의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감독은 그가 모자를 벗기를 원했으나, 날씨가 추워 모자를 고집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코네리는 이 영화로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고생한 보람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치밀한 고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성모상은 중세시대의 것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의 성모상이라고 합니다. 옥에 티라고 할까요.^^
소설원작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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