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얼마나 많이 팔랑귀들이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팔랑귀 비율은 얼마나 되고, 팔랑귀가 피해야될 분야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팔랑귀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판단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어느 정도로 받는 것일까요? 여기서는 이런 사람들을 편의상 '팔랑귀'로 지칭하도록 하겠습니다.
'팔랑귀'는 귀가 팔랑팔랑 거릴 정도로 얇아서 남의 말에 잘 넘어가고 속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요. 같은 의미로 '습자지 귀', 반대의 뜻으로 '말뚝 귀'도 재미있게 쓰이고 있습니다. 저도 귀가 얇은 쪽으로 속합니다만. ㅠ
오래전 팔랑귀를 찾아나선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심리학의 선구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 1907- 1996)인데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각을 통해 인지한 명백한 증거마저도 스스로 무시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동조 실험이라고 불리게 될 역사에 남을 실험을 했습니다.
팔랑귀를 찾기 위한 흥미로운 실험 : 솔로몬 애쉬의 동조실험
동조 실험 조건
실험 대상자는 일곱 명에서 아홉 명으로 구성된 한 집단에 속하게 되고, 실험 대상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애쉬가 미리 섭외하여 연극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리학 실험에서는 공모자라고 부릅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이 그림과 같은 두 개의 카드를 줍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오른쪽 카드에는 세로로 그어진 세 개의 직선(A, B, C)이 있고, 다른 한 카드에는 한 개의 직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동조 실험의 난이도 : 아주 쉬움
왼쪽 카드의 선과 일치하지 않는 오른 쪽 카드의 선 두 개(A, B)는 다른 선 하나(C)에 비해서 3분의 1만큼이나 길거나 3분의 1만 큼 짧은 것이어서 누가 봐도 충분히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몬 애쉬가 기획한 실험은 실험 대상자가 직선이 한 개 그려진 카드에 있는 직선과 길이가 같은 직선(C)을 다른 카드에서는 고르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는데요.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다 맞출 수 있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런 실험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리학계는 그간 흥미로운 실험을 많이 해왔고 그중에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유명한 실험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아래 링크 글은 사람들이 고릴라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한 선택적 주의에 관한 실험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동영상에서 본인의 주의력을 한번 테스트 해보세요.
→ 고릴라 실험, 6가지 착각이 불러일으키는 근자감 ↗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팔랑귀가 있을까?
미국에서 팔랑귀 비율은 36.8%였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이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공모자를 투입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질문을 하였을 때에는, 즉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보지 않고, 자신의 결정만으로 판단했을 때, 사람들이 실수할 확률은 1퍼센트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정답이 A, B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즉 틀린 답을 옹호하는 집단의 압력이 있을 경우에는 무려 36.8퍼센트가 자신의 포단을 포기하고 틀린 답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12번의 질문 가운데 70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이 집단의 결정과 동일한 판단을 내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자신이 감각을 통해 얻은 증거를 무시했다는 겁니다.
세계적으로는 팔랑귀 비율이 29%였다.
솔로몬 애쉬는 이 현상이 미국 문화에만 국한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동조 실험을 프랑스, 독일, 일본, 쿠웨이트, 레바논, 노르웨이, 자이레 등을 포함하는 17개 국가에서 실험을 했고 총 113개의 결과를 도출해 내었습니다.
총 133차례의 실험에서, 틀린 답을 찍은 사람이 29퍼센트였는데, 이는 실험에 참가한 29퍼센트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을 통해 얻은 증거를 포기하고 집단의 굴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은 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문화적 특성과 상관없이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개인에 따라 극단적인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몇 번은 직접적이고 분명한 증거가 있는 쉬운 문제에서조차도 집단의 결정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결과였습니다.
팔랑귀가 되는 이유
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감각을 통해 얻은 증거를 무시할까요? 하버드 로스쿨 대학 교수이자 <넛지 Nudge>(2009)의 공저자이기도 한 카스 R. 선스타인은 그 이유를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2009)에서 정보 및 동료 집단의 압력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보다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 같이 맞다고 말한다면 그에 따르는 게 속 편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소수인 자신이 다수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심리 때문에 그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린다고 분석했습니다.
동조현상은 어떤 폐해를 낳을까?
이러한 동조현상은 쏠림현상을 유발하고 집단 편향성의 폐해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는 군중에 순종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 때문에 생기는 지식 위증이라는 심각한 문제도 가져올 수도 있는데요.
'지식 위증(knowledge falsification)'은 경제학자 쿠란의 '선호 위장' 개념에서 카스 R. 선스타인이 따온 것으로 쿠란이 말하는 선호 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이란, 공적인 사안에 대해 대중의 지지와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이 선호하는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선호 위장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가 드러나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 전달되기도 한다고 선스타인은 지적합니다(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45- 49쪽 참조)
동료들이, 혹은 친구들이 모두 A를 주장할 때 혹시 홀로 B를 주장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B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모두 A라고 주장하면 그냥 A가 맞다고 동조하신 경험이 더 많으신가요? 좀 고상한 말로 지식 위증을 해 보신 경험요.
만약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처럼 밝히지 않는다면, 단지 개인적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재앙을 낳을 수도 있다고 선스타인은 경고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이나 존슨 행정부의 베트남 확전 결정 등이 참모들이 작전의 실패를 알고 있었으나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지 못하여 발생한 사건들입니다.
작게는 개인적으로 아마도 그런 경험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내가 그때 진실을 이야기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비참해지지는 않았을꺼야라고 후회하게 만들었던 경험 말이에요.
팔랑귀가 가지 말아야할 곳
이러한 동조 현상은 집단 쏠림을 낳고 집단 쏠림은 집단 편향성을 강화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 다같이 갈 때가 많습니다. 동조 현상은 각종 SNS나 주식투자 세계에서 유독 강화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팔랑귀는 이런 분야를 피해야겠죠?
팔랑귀에서 탈출하려면
팔랑귀에서 탈출하려면 사회적으로는 소수의 의견이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늘 소수자나 반대편의 소수이견에도 귀를 기울여 검토하는 습관을 들이고, 스스로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언제나 옳은 말만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믿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팔랑귀 탈출을 위해서 극복해야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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