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주,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
포기하지 않을 근육을 길러줄 임현주 아나운서의 에세이
임현주 아나운서는 2018년 어느 봄날, 뿔테 안경을 쓰고 MBC 아침 뉴스를 진행했다. 그때부터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2020년에는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의 '노(No) 브래지어 챌린지'에 참여한 심경을 아래와 같이 말했다.
"1겹의 속옷을 뛰어 넘으면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뭐든 시작이 망설여지는 법이죠. 공감과 변화는 서서히"
그리고 역시 2020년 봄날, 라디오스타 게스트로 박해미와 나왔을 때, 김구라 등 진행자들이 박해미에게 '여성스럽다'라고 무람없이 말했다.
참으로 뜨악했는데, 임현주 아나운서가 바로 지적했다. '너답다'라고 하든가 '매력 있다'로 해야지 왜 여성스럽다고 하느냐고, 둘러대지 않고 자기 의견을 말했다. 역시 임현주는 실망시키지 않고 매일 해낸다.
임현주 아나운서의 에세이집,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한겨레출판, 2021)도 그런 책이다. 아나운서 13년차의 고뇌와 행복을 담았다. 무엇보다 여성 직장인으로서 뚜렷한 주관을 밝히는 문장들이 좋다.
임현주 아나운서 프로필
1985년 광주에서 태어난 임현주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부산 KNN에서 시작하여 광주 KBC 아나운서, JTBC 아나운서를 거쳐 2013년 MBC에 32기로 입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중히 듣고, 솔직하게 쓰고, 알아가기 위해 읽고, 주관을 갖고 말하려는 사람. 매일 방송국 안팎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책날개)
이 책을 읽게 된 동기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를 읽게 된 동기는 여럿이겠지만 우선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삶이라는 게 정답이 없다 보니 늘 헤매는데 그렇게 헤매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해내고 마는 삶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엇일지 책 제목을 보자마자 아! 하는 감탄과 함께 바로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 상처받고 흔들리고 부딪힌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조언을 하는 임현주 아나운서의 글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삶을 특별한 삶이라고 생각하라는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시시때때로 자신이 한없이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이없는 실수를 했을 때나 도무지 해결책을 못 찾을 난관에 부딪힐 때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인간인지 다시금 자책하고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특별하기는커녕 평범한 존재도 아닌 것 같은 무력감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렇게 땅 속으로 파고들다가도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막상 해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킨다. 좀 더 무모하게 살라고. 움츠리지 말라고. 버티면 해낼 수 있다고. 너는 특별한 사람이고 너의 삶도 특별한 삶이니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지나고 보면 이런 상황들의 연속이 모든 사람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겁먹고 있는 나에게 한번 더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책을 찾아 읽었다는 것은 내가 지금은 헤매는 것과 해내는 것의 중간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작가의 문장들
p. 20 알면서도 자주 잊어버린다. 무엇을 가졌든 그보다 더 갖지 못해 아등바등 하는 사람은 여전히 불행하고, 원하던 바를 다 이루지는 못했더라도 지금 경험하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은 매일 새롭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p. 42~43 꿈꾸던 일도 직업이 되면 소유 자체에서 오는 행복감은 금세 희석되고 만다. 환상을 걷어낸 후 몰랐던 단점과 힘든 점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익숙함 때문인지 어떤 날은 내가 하는 일이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자아실현보다 먹고사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또 어떤 날은 이 일을 해서 천만다행이라고 안도감을 느낀다. 문득,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내 애인이란 말인가 하고 달리 보이는 날이 있는 것처럼. 익숙했다가도 이래서 내가 여전히 방송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순간들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온다.
p. 101 "우리 모두 각자 삶의 무게를 버티고 있잖아요. 다정한 태도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지속할 힘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그래서 같은 말을 하더라도 더 다정하게, 따듯하게 건네고 싶어요."
p. 182~183 "상대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걸 배웠어요. 메일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항목을 나누어 쓴다든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필요한 것들을 짐작해 알려주는 일들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무척 중요하다는 것, 제가 배운 바예요."
독후 감상
일상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지금의 삶이 시시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든가 아니면 지금의 삶은 그대로 두면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대체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는 만만하지 않다.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많아 웬만한 용기를 내지 않고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듯 보이지만 한편 엄청 쉬운 일일 수도 있다. 나는 대체로 후자를 택한다, 아니 택할 수 밖에 없다. 아침에 출근하기가 싫을 때는 출근하는 차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을 업한다.
낯선 업무를 접할 때의 두려움은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설렘으로 전치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성취감이나 성장에 대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물론 항상 이러지는 못한다. 다행스러운 건 나이를 먹을수록 실수에 대한 맷집이 커진다는 거다. 생떡쥐페리의 기도문 - 인생의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지 않게 해 달라 - 처럼 인생에서 실수 혹은 실패가 디폴트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작은 성공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더우기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건 더 어렵다. 다정하게 대하는 것, 상대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란 눈치껏 상대를 배려해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 따라 생각한다. 상대를 배려해준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내가 받고 싶은 배려를 상대에게 해주는 것인데, 상대는 원하지 않는 배려일 수도 있다는 거다.
나도 그렇게 살아간다. 내가 받고 싶은 배려를 상대에게 베푸는 방식으로. 상대는 귀찮을 수도 있고 그 배려가 다소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배려의 내용이 싫건 좋건 간에 배려하는 마음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 내가 배려받고 있구나.'라는 사실이 어쩌면 배려의 내용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런 마음이 살아가는 힘을 주니까. 그 힘으로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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