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는 여행의 의미와 이 세상에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인간이라면 언젠가 한번은 꿈꾸게 될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여행하는 청년 리처드, 틸다 스윈튼이 유토피아 공동체 리더 '살' 배역을 맡았다.
올여름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비치>를 통해 리처드(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맛본 경험을 대리 만족해도 좋을 법한 영화다. 넷플릭스에서 6월 30일까지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알렉스 갈랜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비치>는 <트레링스 포팅>(1996)으로 데뷔한 대니 보일이 연출했다. 필모그래피에 좀비 영화의 걸작 <28일 후>(2002)와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 <127시간>(2010), <프랑켄슈타인>(2011) 등이 있다.
영화 비치 줄거리
여행의 의미
미국 청년 리처드(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흥분되고 짜릿한 모험을 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18시간 동안 날아가 방콕에 도착한다.
리처드는 어떤 초대든 사양하지 않고 공손하되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뭐든 새 경험을 즐기는 것이 무릇 여행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동남아시아의 관문이자 별천지인 방콕. 야시장의 번잡한 골목을 돌아다니는 앳된 리처드의 얼굴은 벌써 달뜬 표정이다. 리처드라는 캐릭터는 리즈 시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잘 어울리는 배역이다.
고생은 사서해야 제 맛이라는 리처드는 야시장에서 독사주를 기꺼이 마시는 객기를 부리고 허름한 호텔을 잡아 투숙한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기껏 아늑한 호텔에서 스펙터클 무비 따위나 보는 관광객들은 리처드에겐 한심한 여행자들일 뿐이다.
호텔 복도에서 우연히 연인인 프랑소아즈(비에르지니 르도엔)와 에띠엔(기욤 까네)를 만나고 약에 찌든 대피(로버트 카알라일 )를 만나면서 리처드의 환상적인 모험은 막을 올리기 시작한다.
로맨스와 유토피아의 세계
비키니를 입은 프랑소아즈의 육감적인 몸매는 리처드에게 앞으로 전개될지도 모를 로맨스에 대한 야릇한 욕망에 불을 지폈고, 대피가 죽으면서 남긴 파라다이스 그 이상이라는 비밀의 섬 지도는 그에게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했다.
리처드와 연인 프랑소아즈와 에띠엔은 방콕에서 수라타니를 거쳐 나톤, 차왕까지 800km를 이동하는 낯선 여행을 하기로 의기투합하고 모험에 나선다.
차왕에서 1킬로미터를 넘게 셋이 헤엄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비밀의 섬은 그러나, 리처드가 꿈꾼 낙원과는 거리가 있었다.
병풍 같은 암벽에 가려져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마야 베이. 눈처럼 하얀 모래에 수정처럼 투명한 물과 야자수가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었지만 그곳은 단지 이상향을 꿈꾸는 여행자들이 꾸린 공동체에 불과했다.
유토피아의 한계
비치 공동체는 낚시를 하고 과일을 채취해서 단체로 식사를 했다. 해변에서 갖가지 놀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어쩔 수 없는 두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해 주기적으로 차왕에 나가 섬에서 재배한 대마초를 팔아 식량과 생필품들을 교환해야 했다. 대마초마저 섬의 원주민들과 협상해서 나눠 가지는 형태이니 유토피아의 영속성은 전적으로 외부의 생산과 유통 메커니즘에 의해 좌우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욕망은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 어느 날 크리스토가 상어의 공격을 받아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을 때도 그들은 유토피아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향락적인 생활에 방해가 되자 크리스토를 산에 버리기까지 한다.
비치 결말(스포일러)
비밀의 섬으로 들어올 때 리처드는 정보를 퍼트리고 싶은 유혹에 못 이겨 비밀의 섬 지도 복사본을 차왕에서 우연히 만난 일행의 문틈에 남겼다. 그 지도를 보고 비치에 접근한 그 일행은 원주민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그 일로 공동체마저 위기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리처드는 미쳐간다.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듯한 리처드의 환상 장면들은 뜬금없는 영화의 점프다. <비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는 영화인데 당시 리처드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베트남 전쟁을 겪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리처드와 공동체 구성원들은 원주민들에게 가까스로 목숨을 구걸하여 그들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한 비치에서 난민처럼 보트를 타고 쫓겨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리더 '살'만 홀로 비치에 남은 채.
감상 포인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 연기가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 뜬금없이 등장한 전쟁 트라우마 시퀀스는 훗날 레오나드도 디카프리오에게서 자주 보이는 메서드 연기의 전조가 된다.
영화 <비치>의 촬영지는 태국의 국립공원 피피섬의 마야 베이다. 영화에 나온 피피섬은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내는 원시적인 풍광미를 뽐내는 유명 해변 휴양지다.
단, 이 영화를 보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 유혹에 빠져 마야 베이를 찾는다면 이 영화로 유명해져 북적대는 관광객을 보고 리처드처럼 혐오할 가능성이 높다.
에필로그
금지된 욕망
리처드는 유토피아가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하며 모험을 감행했다. 욕망은 욕망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태양도, 조수의 물살도 식힐 수 없는 욕망에 몸을 맡겼다.
산호초가 별빛을 받아 에메랄드빛으로 물드는 밤, 리처드는 에띠엔의 연인 프랑소와즈와 수중에서 금지된 로맨스를 즐겼다. 생필품으로 구하러 리더 '살'과 차왕에 갔을 때도 리처드는 애인(벅스)이 있는 그녀와 금지된 사랑을 즐겼다.
'살' 또한 벅스는 남자 친구이자 파트너이고 리처드는 관계만 가진 사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리처드에게 "잠을 좀 자둬, 아침이 되기 전에 또 할지도 모르니까" 말한다.
비치 공동체는 일부일처제로 운영되는 듯했지만 리더 '살'은 그 금지를 자신은 넘어설 수 있다는 걸 애써 숨기지 않는다. '살'은 아주 작은 권력만을 행사하며 민주적인 리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살'의 존재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권력일지라도 언제든 생사여탈을 강압적으로 행사할 수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만다는 만고의 진리를 은유한다.
여행의 끝과 시작
여행은, 돌아왔을 때 떠날 때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리처드는 여행에서 돌아와 성숙한 자신을 발견한다.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스스로 낙원이라고 느끼는 곳이 낙원이라는 것을.
유토피아에 대한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멋진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낙원이 아직도 실재한다고 믿지만 찾는다고 발견되는 곳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상향이라고 느끼는 그곳이 바로 유토피아이다. 만약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된다.”
영화 <비치>의 라스트 신은 프랑소와즈가 메일로 보내온 사진을 리처드가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마야 베이를 배경으로 모두 모여 행복하게 점프하며 찍은 단체 기념사진.
리처드는 그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를 새로운 시작으로 이끌 것임도 아마 알고 있었으리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영화들
유토피아에 대하여
유토피아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 있을 수 없으니 너도나도 유토피아를 꿈꾼다. 금지된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금지되어 있으니 더욱 갈망한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은 언제나 불멸을 꿈꾸며 금지된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미련한 몸뚱이를 가진 인간인 이상 생존의 수단과 욕구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영혼으로만 실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은 살기 위해 먹고 자고 사랑을 하는 등 본능에도 몸을 맡겨야 한다. 영화 <비치>는 유토피아에서조차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욕구를 어쩌지 못해 그 모든 사단이 일어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그러니 유토피아를 찾기보다 욕망을 조금이라도 줄여 나가는 길만이 유토피아처럼 평온하게 사는 길이다. 만약 운 좋게도 리처드처럼 그런 순간을 만나면 영원히 기억하면 된다. 그런 순간은 결코 잊히지 않는 법이니 애써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아니 어쩌면 애써 지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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