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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공감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그룹의 경영비리와 비자금을 세상에 알린 책

by 다독다감 2021. 4. 19.

삼성그룹 경영비리와 비자금 폭로로 경종을 울렸던 김용철 변호사,
이 글에서는 그의 폭로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2010)는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양심 고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저자가 이 책으로 다시 한번 더 삼성그룹의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삼성가의 비리와 상속 문제의 심각성을 일반에게 크게 환기시킨 책입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그룹의 회장 비서실에 입사하여 재무팀과 법무팀에 7년간 일하면서 알게 된 삼성가의 내밀한 비밀들과 자신의 검사 시절 이야기들을 <삼성을 생각한다>에 솔직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이건희와 삼성가의 가십성 읽을거리로 인기몰이를 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 개인이 삼성그룹에 맞서 내부고발을 한다는 것은 비상한 결단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당시, 중앙일간지에서 광고를 일제히 거부한 사례만 보아도 재벌 삼성과 맞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재벌 기업인 삼성에 맞서 내부고발을 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다만, 내부고발은 꼭 의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고발을 한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내부고발이 폄훼되어서도 절대 안될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재용이 구속되면 삼성전자 주가가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재벌 오너들이 구속될 때마다 주가는 오히려 더 상승했습니다. 이는 재벌기업과 재벌 오너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시장의 평가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삼성그룹 비리가 김용철이 의인이 아니었다고해서 덮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 역시 분리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 김용철은 자신을 의인으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의인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따라가며 인간 김용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따옴표는 모두 책 속에서 김용철의 문장들을 인용한 것입니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단숨에 화제를 모으며 2권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김용철의 강직했던 검사시절

김용철은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대한민국 검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 2월 고려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의 법무관 복무를 마친 1989년 2월 검사로 임관됐습니다.

 

"꾀병을 부린 병사를 구속시킨 일이 있다. 해당 병사의 친척이 찾아와 구속은 시키더라도 전과 기록은 남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기록을 없애 달라는 불법적인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김용철은 검사생활 이전부터 강직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그의 강직함은 검사가 된 뒤에도, 자신의 집안 형편이 크게 달라지지 않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온갖 일을 해야 했는데, 아이들을 모아놓고 미술과 영어를 가르쳐서 생활비를 감당했다고 합니다.

 

"초임검사 시절에는, 관내(인천지검)에서 무면허 약사인 김용철의 종조부를 체포하도록 지시한 일이 있었다. 또, 취중 교통사고를 낸 그의 친동생, 만취상태에서 폭력을 행사한 처남을 모두 구속하도록 했다."

 

"당시 담당 검사가 피의자들이 친족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부담없이 처리하세요"라고 말했다. 결국 친가, 처가의 형제들과 20년 가까이 만나지 않는 의절 상태가 됐다."

 

김용철은 학교 선배나 동기들이 사건 관련 청탁을 해 오면 정중하게 거절해도 될 일을, 정색을 하며 "나를 도와줘야 할 입장에서 불법적인 일을 부탁하느냐"고 훈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나를 도와줘야 할 입장'이란 무엇을 말하는지도 애매합니다.

 

결국, 많은 동문들이 그와 의절하다시피 했는데 당시 김용철은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김용철의 청렴 강직한 검사상의 자랑은 계속됩니다.

 

“홍성지청 시절, 깨진 병으로 남의 목을 찌른 사람을 벌금형으로 처리해서 석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거부했다. 살해 의도가 명백한 피의자를 석방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다른 검사에게 재배당됐다. 당시 그 피의자 쪽 사람이 나를 찾았다. 관내 유지였는데, 돈을 들고 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청장님에게도 인사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뇌물공여 의사표시 죄로 인지 수사하지 않는 게 다행인 줄 알라면서 그를 돌려보냈다."

 

김용철은 청렴하고 강직한 이러한 무용담을 이 책 곳곳에 장황하게 이어집니다. 일테면 큰 꼭지까지 달아서 김용철은 다음과 같이 무용담을 자랑합니다.

 

"부산지검에서 유흥업소 사건을 수사하면서, 단속경찰관들이 푼돈을 받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만 원 받은 경찰관은 서장으로 하여금 사표를 받도록 했고, 50만 원 받은 경찰관을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기각되자 재청구하여 결국 영장을 받아냈다.

 

소액 뇌물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려고 그랬다."(301쪽)

 

검찰청의 좌천성 인사발령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용철의 검사 시절은 양심과 강직함의 화신으로 묘사됩니다. 그가 검찰을 떠나 법조계 처음으로 대기업에 취직하게 된 것도"그의 강직함 때문에 검찰을 떠나게 되었다"고 김용철은 회상합니다.

 

"나는 골프를 잘 못 칠 뿐더러 싫어했다. 선천적인 심장 이상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에도 공놀이를 해 본 기억이 없다. 공놀이가 질색인 내게는 골프는 고역이었다. 게다가 나는 접대에 도무지 소질이 없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가, 억지로 비위를 맞추는 일은 염 젬병이었다."

 

부장검사가 되면 스폰서를 끌어들여 부하검사들에게 골프 모임도 마련하는 것이 영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강직한 검사 김용철에게 검찰청은 좌천성 인사발령을 합니다.

 

"1997년 서울지검 특수부 수석검사를 떠나게 됐다. 예상치 못했던 인사 조치였다. 6개월 뒤 부부장으로 진급이 예정돼 있었는데도 부천지청으로 발령으로 났다."

 

삼성그룹 고문 변호사 시절

좌천성 발령이 나자 그는 1997년 8월 삼성에 취직합니다. 검찰에서 양심과 강직함의 화신으로 자신을 묘사하였던 김용철은 삼성에 취직한 이후로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법인카드를 가지고 친구들에게 밥 사고 골프 치고 휴가 때 숙박비를 대주는 등 인심을 쓰고 다녔다. 골프도 한 팀이 아니라 한꺼번에 여러 팀을 초대하여 내가 일체의 경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하곤 했다.

 

에버랜드 무료 이용권이나 의류상품권을 현직 검사들에게 주기도 했다. 대법관에게 150만 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10만 원을 받은 경찰관은 사표를 받고 50만 원을 받은 경찰관을 구속을 시키는 집요함을 보였던 저자가 삼성에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회사 돈을 가지고 그저 '인심'을 쓴 것으로 인식합니다.

 

푼돈을 받은 경찰관은 구속시켰지만 삼성에서의 한 불법 행위들은 한 스스로에게는 '인심을 쓴 것'으로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그의 이러한 불법행위들은 청렴 강직한 수많은 무용담과 적절하게 혼합하면서 미화됩니다.

 

"나는 검찰 선후배나 동기들에게 뇌물성 현금을 전달하라는 지시를 종종 받았다. 나는 이런 지시를 때로 이행했고, 때로 거부했다. 돈을 받은 검사들 가운데 일부는 돈을 되돌려줬다."

 

삼성의 고문변호사 김용철에게는 양심도, 강직함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강직함 때문에 검찰을 떠났다고 스스로 말한 김용철은 더 이상 강직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푼돈을 받은 경찰을 해직시켰던 김용철이가 삼성에서는 어떻게 거액의 뇌물을 뿌리고 선물을 돌릴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입니다.

 

동일인물이 아닌, 동명이인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의 뇌물 무용담에는 치열한 자기반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옳은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삼성그룹에서 승승장구했던 김용철

삼성에서 김용철은 승승장구했습니다. 2000년, 그는 재무팀 상무로 승진했는데요. 아래에서 인용하는 단락을 읽어보면, 재무팀 상무로 승진한 김용철은 강직함의 화신에서 범죄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하는 악마로 돌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재용이 1996년 발행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시가보다 훨씬 싼값에 인수한 게 에버랜드 사건이다. 그런데 2000년 6월 곽노현 교수 등 법학 교수 43명이 이 사건을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래서 삼성은 검찰 조사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필요해졌다.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짠 시나리오에 맞춰 조사 대상자들이 증언을 해야 했으므로 조사 대상자를 불러 시나리오를 반복 학습시키는 작업은 필수적이었다.

 

삼성 구조본이 통제하기 어려운 그룹 외부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우호적인 사람이 조사받게 하도록 검찰과 협의했다. 변호사별로 대상자들을 분류하여 반복 학습시켰고 시나리오가 서로 어긋날 경우에는 관재파트 임직원과 다시 협의하여 시나리오를 바꿨다. 시나리오를 계속 다듬고 다시 교육시키는 일은 보통 작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지목한 삼성 비리의 핵심 2인방 이학수와 김인주의 장자방이 됩니다.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는 김인주와 함께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며 고민하면서 며칠씩 보내기도 했다. 이학수, 김인주, 이재용 등은 고민스러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와 의논했다."

 

삼성 구조본에는 이른바 '관리 대상 명단'이 있었다는데, 그는 관리 대상 명단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다뤘던 걸로 보입니다. 삼성이 뇌물을 조직적으로 뿌릴 명단조차 그의 손에서 놀아나게 된 것입니다. 삼성 비리의 핵심에 들어선 김용철은 2002년 전무로 승진하게 됩니다.

 

2002년 전무로 승진하면서 김용철은 더욱 대담해집니다. 구조본 법무팀장을 맡은 뒤, 그의 주요 업무는 이재용의 불법 세습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관해 증거 사실을 조작 왜곡하고 조사 대상자들이 검찰에서 거짓말을 하도록 시나리오를 짜서 학습시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대담한 공적들은 삼성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홍성원 사건을 잘 마무리한 보상으로, 이학수가 그에게 1억 원 수표 한 장을 줬다고 합니다. 김용철이 받았음은 물론입니다. 그는 그 돈을 옳은 일 같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며 받았다고 합니다.

 

김용철은 또 제주도 호텔 스위트룸에서 그의 처와 휴가를 보냅니다. 물론 회사가 공적으로 보낸 준 것이지만, 역시 그에게 양심의 가책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삼성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삼성에서 이렇게 인정받고 잘 나가던 김용철은 2004년 8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 7년 동안 저질러 온 비리행위에 대한 자각이 그에게 갑자기 일어나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그들은(삼성) 내가 왜 구조본을 떠났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 김용철은 말합니다. 그가 진짜 삼성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도 궁금해지는데 말입니다.

 

여기서 잠깐, 당시 검찰청 쪽 분위기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용철이 회사를 떠날 무렵은 대검 중수부장 안대희가 비자금 수사의 칼끝을 삼성에 겨누고 있을 때입니다.

 

"나더러 안대희를 '관리'하라고 했는데, 안대희는 '관리'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게 일을 제대로 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를 관리할 생각이 없었다."

 

정말 김용철은 안대희를 관리할 생각이 없었을까, 뇌물공여를 직업적으로 해온 김용철의 감각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검사시절과 삼성시절의 저자는 다른 인간이었을까?

아무튼, 여기까지가 삼성에서의 김용철의 모습이다. 양심과 강직함의 화신이었던 그가 어떻게 삼성에서는 거의 1년 내내 골프를 치고 뇌물을 공여하고 증거 조작까지 일삼는 범법자가 되었을까요?

 

위에서 인용한 문장들에서 보았듯이 검찰과 삼성에서의 인간 김용철은 다른 인간으로 보입니다. 김용철은 청렴 강직함들의 무용담과 범법을 저질렀던 삼성에서의 무용담을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시간 순이 아닌, 마구 뒤섞어 놓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김용철은 꾀병을 부린 병사, 힘없는 증조부와 친동생, 그저 그런 선배와 동기, 푼돈을 조금 받은 경찰관 등 소위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강한 강직함을 보였습니다.

 

약한 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인 김용철은, 그렇다면 강자들한테는 어땠을까요? 검찰청장이나 그의 상사들한테도 그는 강직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기술한 텍스트 안에서이지만.

 

"서울지검 특수 2부 시절, 서울특별시 제2기 지하철 5,6,7,9호선 공사 23개 구간의 현장 감독 공무원들이 매월 마지막 날 피감독 업체로부터 300만 원씩을 받고 있는 것을 인지 수하여 전원 구속했다. 그 뒤 나는 전국 철도청으로 수사를 확대할 증거를 확보하였는데도, 암묵적인 중단 지시를 받았다."

 

약자들에게 보인 강직함이 김용철의 본성이었다면, 단지 '암묵적인'은 중단 지시를 받고 수사를 중단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의 신설된 다리의 경우, 공사비의 40%만 투입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수사과정에서 재벌 계열 건설업체들이 불법 공여할 정치자금을 하청업체들에게 분담시키기도 하고, 하청업체들의 명의로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한 증거를 확보했다.

 

그래서 10여 개 건설업체들을 압수수색하겠다고 건의했다가 청와대와 사돈 되는 기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그래서 일부 기업을 빼기도 하였는데 당시 검사장은 일부 기업을 빼면 오히려 문제가 되니 전부 수사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수사하지 못했다."

 

강직함이 본성인 사람이라면, 청와대와 사돈되는 기업이라고 해서 일부 기업을 수사에서 빼는 것을 넘어 아예 수사를 중단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그의 검사 초기 시절 강직했다던 무용담들조차 시나리오처럼 조작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신문의 편의를 위해, 나는 그가 좋아하는 호칭을 쓰기로 했다. "각하(전두환), 오늘은 불편한 보고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김우중 회장께서도 각하께 200억 원을 드렸다는데요"

 

이 구절을 읽고 나면 약한 자들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들에게는 한정 없이 비굴한 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는 2007년 10월 양심 고백을 하고 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양심 고백은 양심이 아팠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양심이 아팠다는 구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억 원을 받으면서도 그는 옳은 일 같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양심 고백 시기에 대한 의문점들

김용철이 진정으로 양심 고백을 하고 싶었다면, 2000년쯤 했을 것입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가 터졌을 때, 김용철은 증거조작을 할 것이 아니라 그때 양심 고백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때가 아니라도 김용철에게 양심 고백을 할 순간들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서야 김용철은 양심 고백을 선택했습니다.

 

김용철은 검찰의 좌천성 인사발령에 발끈하여 검찰을 떠나 대기업으로 가는 최초의 현직 검사가 되었지만 안대희라는 또 다른 검사를 만나 삼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안대희를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고 있었던 당시 검찰로부터 절박한 위기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삼성을 탈출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짐작도 해봅니다.

 

그렇다면 그가 진정으로 양심 고백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궁금해집니다.

 

김용철은 (삼성 사람들이) 오염된 영혼이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오염된 영혼이 삼성 사람들뿐이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김용철은 삼성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어쩔 수 없이 삼성에 의해 자신이 비리를 저지르게 되었을 뿐, 자신은 삼성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삼성을 생각한다> 기저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는 곧 전형적인 범죄자들의 사고방식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과 함께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김훈의 소설 <공무도하>(2009)의 한 구절이 떠 오릅니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 문제다. 시급한 현안이다."

 

김용철은 1958년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이 글은 미완성 글입니다. 완성하기에는 능력이 역부족임을 절감합니다. 김용철에 대한 평가는 독자분들의 몫으로 남기며 글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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